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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소리-
산 소리였지
꽃 피고 싱그러이 잎 피고
노을 빛 가슴으로 타다가
겨울 산정에 우뚝 서는 한 물결 큰 소리였지.
바다 소리였지
출렁이는 가슴의 해일 속에
독도를 끌어안고
역사의 세월을 지켜온
외로운 파수꾼의 큰 소리였지.
바람소리였지
꽃잎 날리고 산을 흔들고
천지간을 끌어안고 질주해온
일흔 다섯 해
외로운 거인의 몸짓이었지.
한국화 하면 맨 앞 줄에 내세울 수 있는 작가, 그가 바로 일랑 이종상(一浪 李鍾祥)이다. 물론 그 앞에는 그의 스승인 산정 서세옥도 있고 채색화의 일인자 천경자도 있지만 어쨋든 그는 한국화의 정점에 위상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린 단순한 화가가 아니다. 역사적 소명의식, 현실 참여의식, 작가로서의 빛나는 예술혼, 교육자로서의 봉헌, 그리고 예술과 생의 길을 일치시킨 거장이기 때문이다.
대자연을 하나의 예술혼으로 동화시킨 작가, 이상과 현실을 명료하게 균형 잡은 작가, 문학, 철학, 미술, 국악에 이르기까지 인문과 예술을 흉금에 녹여낸 작가로서 이종상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그는 한국화 작가로서의 큰 길을 다진 것뿐 아니라 역사적 소명의식을 작품에 점철해낸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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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를 깊이 연구했고 그 역사적 예술성을 현대 조형법으로 복원해낸 것은 누가 뭐래도 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독도 그림만 해도 그렇다. 그는 단지 독도를 어떤 풍광적 조형으로 그린 게 아니다. 거기엔 그의 투철한 민족주의, 민족의식, 국가관이 뚜렷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독도 문제는 중요 한 이슈가 되어 있다. 국내뿐이 아니라 국외에서까지 국제적 이슈가 되어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독도가 별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을 때 그는 독도를 작업의 테마로 삼았다.
실경산수에도 능했던 그였지만, 산수의 소재가 될 유려한 풍경이 많았어도 그는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돌섬인 독도를 수없이 그렸다. 그것은 단순한 독도가 아니었다. 독도가 지닌 의미, 독도가 지닌 상징성, 독도가 안고 지나온 무구한 세월을 그는 조형화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역사의 선험자였는지 모른다. 관념이 아닌, 역사의 현장과 시간을 응시하고 언어화한 큰 안목을 지니고 있는 작가인 것이다. 거기에 문기가 넘치는 필력, 서정이 넘치는 화면을 꾸민 기막힌 연출자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대표적 작업이랄 수 있는 원형상은 재료, 기법, 조형적 구성면에서 한국 회화사상 하나의 획을 그은 작업이다. 한국화의 현대화는 물론 실험성이나 완성도에서 세계미술과 겨룰 수 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원형상이 지닌 대자연과 인간에 대한 함의는 높고 깊은 언어가 되어 조형예술로 완성됐다. 그게 이종상만이 지니고 있는,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나라엔 역량 있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단순한 예술성으로만 보면 정말 좋은 작가들이 많이 있다. 그러는 그것들은 그냥 좋은, 또는 아름다운 그림일 뿐이다. 물론 다 나름대로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더 좋은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본질은 물론 역사성, 현실성, 그리고 생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다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로 이종상의 작품이 거기에 해당된다.
더욱 그의 작품이 평가되는 것은 완벽한 짜임새와 더불어 여백에 스며있는 문학적 철학성 때문이다. 예술성과는 병립하기 힘든 철학성이 절묘하게 작품의 품격을 높여준다.
미학뿐이 아니라 문학, 음악에 대한 애정과 광범위한 소양을 지니고 있기에 그 조형의 스펙트럼이 넓을 수밖에 없다. 고희가 훨씬 지났어도 청년의 사고와 열정을 지녔기에 일랑(一浪)이라는 아호처럼 그는 머무는 물결이 아닌, 지금도 정진하는 큰 물결의 작가인 것이다.
류석우 시인(미술시대 주간)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75호(5월7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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