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가 여는 'K팝 3.0 시대'

순식간에 글로벌 스타가 된 싸이는 그전까지 외국 진출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음악을 꾸준히 해왔을 뿐이다. 그가 유튜브를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제 ‘한국 음악’의 저변을 이루는 밴드들이 주목받을 차례다. 올해 세계적 프로듀서와 함께 미국에 진출하는 밴드 노브레인과 글렌체크는 ‘K팝 3.0 시대’ 개척자로 꼽힌다.


[펑크밴드 '노브레인'] 마돈나 발굴한 제작자가 러브콜 "무대서 신나게 놀다 올 겁니다"

"정신 나간 듯 난리치는 펑크… 우리가 스카우트된 이유래요"

"우리에겐 지금 미국 밴드들에게 없는 '80년대식 펑크'가 있대요. 무대에서 정신 나간 듯이 난리 치는 그런 펑크요."

황현성(36·드럼)이 웃으며 말했다. 밴드 결성 18년 만에 미국 진출을 눈앞에 둔 펑크밴드 노브레인 멤버들은 설렘을 숨기지 못했다. 이들은 작년 미국 음악계 거물인 시모어 스타인(73·사진) 워너뮤직 부회장에게 발탁돼 영어 앨범 작업 중이다. 작년 11월 10여곡을 보내 미국 제작진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은 상태. 1996년 결성된 노브레인은 크라잉넛과 함께 한국 인디 음악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2006년 영화 '라디오스타'에 출연, '넌 내게 반했어'를 외치며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최근 서울 홍대 앞에서 만난 이들은 스타인과 만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작년 3월 '서울소닉 북미투어' 중 캐나다 토론토 공연에 "소싯적 한 가닥 했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왔다. '한밤의 뮤직'과 '넌 내게 반했어' 같은 노래를 부르는 내내 자리를 뜨지 않던 그 할아버지는 공연 뒤 와서 "미국에 몇 번 와봤느냐. 미국에서 앨범 몇 장 냈느냐"고 묻더니 미국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런…"하고 혀를 차며 가버렸다. 그가 바로 '최초의 펑크밴드'라고 불리는 라몬스(Ramones)를 1970년대에 발굴했으며 마돈나와 처음 계약한 사람이었다.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의 답은 이랬다. "뻥치시네!" 이튿날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스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공연보고 탈진할 뻔했다. 라몬스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이성우(38·보컬), 정민준(34·기타)이 동시에 말했다. "그건 펑크밴드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어요." 정우용(32·베이스)은 "숨어서 엉엉 울었다. 비전이 안 보여 몇 번이나 음악을 관두려고 했는데…"라고 했다.

현재 세부적인 계약 내용이 오가고 있어 국내 활동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일단 새 앨범 작업이 중단됐다. 같은 회사 소속 밴드 '장미여관'이 TV 오락 프로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전용 자동차도 빼앗겼단다. 그래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뭔가 해내야 한다고 경직되고 싶지 않아요. 딱딱하면 부러지니까요. 신나게 놀고 올 겁니다." 큰형 이성우가 말했다.


[일렉트로닉 듀오 '글렌체크'] 돈 없어 방 안의 컴퓨터로만 작업… 이젠 U2 프로듀싱한 거물과 함께

그들만의 '골방 음악' 울린다… 전세계 일렉트로닉 광장에서

글렌체크 멤버 둘에게 “미국 진출하게 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23세 동갑인 이들은 “전보다 나아졌다”고만 말했다. 이들은 U2와 롤링스톤스 음반을 프로듀싱한 거물 스티브 릴리화이트<사진>와 함께 작업하게 됐다. 이들 일렉트로닉 듀오 김준원·강혁준에게 “너무 덤덤한 것 아니냐”고 재차 묻자 “전 세계 투어를 하고 싶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만나고 싶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멋있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들은 지난 2년간 한국 밴드 음악에서 가장 뜨거운 팀 중 하나였다. 2011년 EP를 내며 데뷔한 이들은 앨범을 비롯한 아트워크(artwork)와 패션 디자인을 전담하는 팀 ‘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와 함께 글렌체크라는 문화를 생산했다. 죽어라고 음악만 하는 걸 미덕으로 여겨온 인디 음악계에서도 화제였다.

컴퓨터 장비로 온갖 사운드를 조합해 만드는 ‘골방 음악’ 계열에서 이들처럼 홀로 솟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은 격자무늬로 만든 큰 격자무늬’를 뜻하는 글렌체크(Glen Check)는 “일렉트로닉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스튜디오 빌리고 세션맨 부를 돈이 없어서”라며 “온종일 컴퓨터로 작업해도 전기료만 내면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내수공업으로 촘촘하게 뜬 체크무늬들은 2014년 미국 진출이라는 큰 체크무늬로 완성됐다.

이들은 3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페스티벌에 선 뒤 LA로 날아가 릴리화이트와 싱글 녹음을 할 계획이다. 릴리화이트는 작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음악마켓 ‘뮤콘’에서 이들을 낙점했다. “그들의 공연에서 큰 에너지를 느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게 낙점 이유.

“표현하고픈 느낌을 어떻게든 음악적으로 찾아내는 재능이 있다고 할까요? 건반을 기타앰프에 연결하고 그걸 카세트에 마이크로 녹음하는 식으로 전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남과 다른 사운드를 낸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일렉트로닉의 총집결지다. 미답(未踏)의 사운드를 끝내 찾아내는 팀이, 어느 나라에서 왔든 간에, 차트 맨 위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