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월 23일

　#16:00 나라에 짐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더욱이 오늘 한일어업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는데 그들의 속셈이 드러났다고 보아진다. 무엇보다도 내가 의연해지고 싶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정신

　#19:05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급박해지고 있다.

　영원한 독도지킴이 장철수 대장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구조를 기다리며 오른손이 부러져 왼손으로 쓴 마지막 항해일지이다.

발해1300호, 통영출신의 장철수 대장을 비롯한 4명의 대원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오는 1월 13일 오전 10시부터 산양읍 수산과학관 뒤편에 마련된 발해1300호 기념탑에서 치러진다.　

1300년 전 고구려 장수 대조영이 건국한 해동성국 발해를 꿈꾸며 민족의 뱃길을 띄웠던 발해 해상항로 학술뗏목탐사대 발해 1300호를 기억하는가.

빼앗기고 잃어버린 민족의 영토, 허리 잘린 반도에 동해바다와 독도마저 지키지 못하는 나약하고 타락한 모습에서 벗어나 광활한 아시아 대륙에 민족 혼불을 밝히고 선조들의 대양을 찾아 나선 4명의 젊은이들.

장철수 대장, 이덕영 선장, 이용호 대원, 임현규 대원!

맨손으로 뗏목의 삼줄을 엮으며, 뗏목을 삼킬 듯 덮여 오는 얼음을 깨며, 칼이 돼 달려드는 동해의 풍랑과 추위 속에서도 온 몸으로 돛대를 부여잡고 요동치는 뗏목과 함께 바다와 한 몸이 되었던 그 이름들이다.

1997년 12월31일 한 척의 뗏목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출발했다.

높이 올린 앞 돛에는 전설 속 치우(蚩尤)천황의 얼굴이, 뒷 돛엔 에밀레종 비천상이 그려져 있었다.

길이 12m, 이물(앞넓이) 6m, 고물(뒷넓이) 4m 크기에 10.8m 자리 2개의 돛을 단 전체 넓이 20평 남짓한 뗏목의 이름은 '발해 1300호'.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 제주 성산포까지 1천244㎞를 항해할 예정이었다.

발해 해상항로 학술 탐사대가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간 것은 97년 5월.

발해인들이 바닷길로 한반도 남부와 일본을 왕래했으며, 중간 기착지로 독도와 울릉도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98년은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지 1,300년이 되는 해. 그래서 뗏목의 이름은 '발해 1300호'로 명명됐다.

"거친 파도, 몰아치는 눈보라, 죽음과도 같은 한 겨울 동해에서 우리를 지탱해준 단 하나의 희망은 발해를 향한 열망이었다." 발해항로 탐사는 '독도 지킴이' 통영출신 장철수(당시 38세·통영초교 63회) 대장의 발상이었다.

장대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8년. '울릉도 주민들이 뗏목을 타고 독도로 자주 건너갔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증명하면서부터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81학번인 장대장이 '독도문제 연구회'를 만든 것은 86년. 첫 대학생 독도 동아리였다.

그는 수업 도중 본 세계지도 10장 가운데 8장이 모두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것에 충격을 받고 "구겨진 역사를 바로 펴겠다"고 결심했다. 2학년 때인 85년에는 '한일 합방 연구'로 외대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그는 모든 것을 잊고 독도에 몰두했다. 울릉도, 서울역, 경남 통영, 경북 안동 등 전국 각지에서 직접 모은 자료로 독도자료전시회를 열었다.

해마다 식목일에는 독도에 나무를 심었고, 독일의 윤이상 선생에게 "평화음악제를 독도에서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독도는 우리 땅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게 하는 민족의 혈"이라며 "분단된 이 땅에서 독도를 남북 동포의 힘으로 지켜낼 때 일본이 넘겨준 만주를 중국에서 되찾고, 대마도와 오키나와까지 우리의 힘으로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97년 5월 장대장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대학을 찾아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주 성산포까지 1,244㎞의 바닷길을 탐사하겠다고 했다.

'푸른 독도 가꾸기' 활동으로 알게 된 울릉도의 이덕영(당시 49세) 선장, 국제 요트대회로 알게 된 창원의 그래픽 디자이너 이용호(당시 35세·촬영담당)씨, 부산 한국해양대 후배인 임현규(당시 27세·통신담당)씨가 대원으로 합류했다.

그는 이미 2년 전부터 발해 해상항로 탐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해양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해사법을 공부했고, 21세기 바다연구소를 만들어 해양정책을 연구했다.

발해 해상항로 뗏목 대탐사에 들인 예산은 4천1백50만원. 대원들이 1천만원을 만들고 지인들이 10만원, 20만원씩 보탰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장대장은 결국 자신이 살던 집을 팔아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교민과 현지 한국 기업들이 볼트와 너트, 주스 10상자, 일꾼 등 십시일반으로 지원을 했다.

직접 못을 박아 뗏목을 만들던 장대장은 오른손 새끼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출항할 때까지도 그의 오른손에는 깁스가 감겨 있었다.

이들을 태운 뗏목은 거친 겨울바다를 헤치고 나아갔다. 닻줄과 선체에는 하얗게 얼음이 얼어붙었다. 기록에 따르면 발해인들은 겨울철 북서 계절풍을 이용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발해 1300호가 겨울에 출항한 것도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눈보라와 폭풍이 몰아칠 때면 뗏목은 바다 위에서 춤을 추었다.

뗏목은 항해 3일째인 98년 1월 2일 육지와 첫 번째 교신에 성공했고 11일에는 38선을 넘었다.

14일 오후 2시에는 울릉도 앞바다에 도착했으나 동해 전 해상에는 폭풍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울릉도 접안을 포기하고 계속 남하하던 뗏목은 진로를 바꿔 부산 해양대부두에 입항하기로 했다.

18일 새벽 2시30분 경북 후포 앞바다에서 지원팀과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만났다 헤어진 뒤 뗏목은 동쪽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해류와 폭풍우가 진로를 방해했다. 라디오에서는 일본어 방송이 들려왔다. 탐사대는 독도 접안을 포기하고 결국 일본 오키제도에 접안하기로 했다.

22일자 항해일지에는 일본측 조사에 대비한 듯 '학술 탐사로 밀려왔다. 한국으로 다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항해 24일째인 1월 23일 오후 4시. 탐사대는 '우리 탐험대가 맞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일본측에 협조를 요청한다'는 교신을 지원팀에 보냈다.

오후 8시56분. "순시선이 왔다. 걱정할 필요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교신이 끊어졌다. 구조에 나선 일본 순시선이 뗏목을 발견한 것은 오후 9시. 구조 헬기는 폭풍우를 뚫지 못했다.

24일 오전 6시. 헬기는 도고섬 서북쪽 후쿠오라항 남쪽 반도 해안에 좌초한 뗏목을 발견했다. 2명은 바다 위에 엎드려 표류하고, 1명은 뗏목에 몸을 묶은 채 파도를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2월11일. 장대장의 것인 듯한 오른쪽 다리 일부분이 발견됐다.

통영시 산양읍 신봉 미륵산 기슭에는 장대장 육신의 일부만이 묻힌 무덤과 '발해 1300호' 추모비가 있다.

윤명철 탐험문화연구소장은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기슭에 있는 '발해 1300호'의 추모비에 이렇게 썼다.

　〃(중략)그들은 잊혀진 나라의 잃어버린 역사인 발해의 전국 1300주년을 맞아 발해사를 복원하고 21세기에는 해양력이 중요한 민족적 현실을 현실을 몸으로 생명으로 알리고자 했다. (중략) 사람들은 반문한다. 그런 위험한 일을 꼭해야만 했었느냐고. 그러면 도체대 무엇이 역사를 만들어가는가? 우리역사의 진실을 누가 어떻게 ..(중략) "탐사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갔다. (중략) 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 역사에 책임의식을 느끼고 진실을 찾고 의미를 위해 생명을 거는 삶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기억하자.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우리 모두 이야기하자."

이후 2010년 산양읍 미남리 수산과학관 뒤편에 장대장을 비롯한 4명의 대원의 동상과 이를 기리는 기념탑이 건립됐다.

강영욱 발해1300호기념사업회장은 “발해 해상항로 복원을 추진하려던 발해 1300호 뗏목탐사대원. 장철수 대장, 이덕영 선장, 이용호 대원, 임현규 대원! 그들은 순국해 살아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항해의 목적을 달성한 성공의 항해였다.”며 “장대장과 이덕영 선장은 독도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때 86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뗏목으로 노를 저어 항해하여 성공하기도 하면서 세종실록지리지에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구절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용호 대원도 장대장과 독도사진전 등을 같이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들의 애국 애족 정신은 지극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들을 지속적으로 기념하고 교육하는 장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영에서도 발해1300호 장철수기념사업회(회장 박지성)은 장철수 대장과 대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올해도 1월 23일 오전 10시에는 추모제사를 지내고 11시30분부터는 발해1300호 기념탑에서 조촐한 추모제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