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통신회사 간부 책상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보곤 깜짝 놀랐다. 화면 맨 밑에 있는 작업 줄에 브라우저 아이콘이 10개 이상 빼곡히 배치돼 있었다. 각각의 아이콘이 어느 웹사이트를 의미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아이콘을 보니 영어 소문자 e에 줄이 그어진
인터넷 익스플로러(IE)였다. 필자가 놀란 것은 흰 줄이기 때문이었다. 흰 줄은 인터넷 익스플로러6(IE6)을 의미한다. 익스플로러7(IE7)이나
익스플로러8(IE8)에는 노란 줄이 둘려 있다.
익스플로러6은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라우저이다. 9년 전인 2001년 8월에 나온 낡은 브라우저라서 보안이 매우 취약하다. '해커 개구멍'이라고 불릴 정도다. 이 브라우저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S)마저 그만 사용하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런 브라우저를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정보기술(IT) 회사 간부가 사용하고 있다니 기가 찼다. 이것이 바로 자칭 IT 강국이라는 'IT 코리아'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익스플로러6을 내놓은 2001년 8월은 윈도XP가 발매되기 두 달 전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윈도98이나 윈도ME에 최적화된 브라우저라고 봐야 한다.
유튜브 동영상이 뭔지도 모를 때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6년 10월에는 익스플로러7을, 2009년 3월에는 익스플로러8을 내놓았다. 새 브라우저에는 당연히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절반가량이 익스플로러6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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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열린 익스플로러6 장례식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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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익스플로러9까지 등장해 익스플로러6을 쓰면 안 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보안이 매우 취약하다. 나온 지 9년이 되다보니 해커들이 취약점을 낱낱이 알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구글 사이트를 공격할 때도 익스플로러6의 취약점을 공략했다고 알려졌다. 둘째, 신기술을 반영하지 않아 인터넷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마다 낡은 브라우저를 감안해 밤샘 작업을 해야 한다. 셋째, 불편하다. 탭 기능이 없어서 사이트를 열 때마다 새 창을 열어야 한다.
브라우저가 익스플로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이어폭스도 있고 크롬도 있고 사파리도 있다. 시장조사 기업 넷애플리케이션에 따르면 2010년 7월 현재 세계 브라우저 점유율은 익스플로러가 60.7%, 파이어폭스가 22.9%, 크롬이 7.2%, 사파리가 5.1%이다. 익스플로러6만 보면 17.0%. 우리나라는? 비공식 자료를 보면 익스플로러가 아직도 90%를 웃돌고 익스플로러6이 절반이나 된다. 이상한 '인터넷 강국'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들어 네이버·다음 등과 공동으로 브라우저 업그레이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버지 PC에는 아직도 보안에 취약한 익스플로러6? 아버님 댁에 IE8 깔아드려야겠어요. 굿바이 IE6." 이것이 웹사이트에 올려진 홍보 문구다. 해외에서는 지난해부터 '익스플로러6 그만 사용하자(IE6 no more)'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월4일에는 미국에서 '익스플로러6 장례식'이 열리기도 했다. 장례식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조화를 보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9월15일 익스플로러9를 발표한다. 아직은 베타 버전이어서 익스플로러8만큼 안정적이지는 않겠지만 익스플로러6의 증손자가 탄생하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익스플로러9에 대해 '가장 빠른 브라우저'라고 주장한다. 익스플로러8은 파이어폭스나 크롬보다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익스플로러9에 HTML5라는 새로운 인터넷 기술을 적용하고 그래픽 성능도 향상시켰다. 웹 표준 준수율도 한층 높였다고 알려졌다.
익스플로러9가 등장하는 날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이 익스플로러6 지원을 중단한다. 이렇게 되면 채팅을 비롯한 페이스북의 각종 기능을 이용하기가 불편해진다. 페이스북뿐이 아니다. 구글은 중국 사이트가 해킹을 당한 직후인 지난 1월 익스플로러6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브라우저 성능은 경쟁이 심해지면서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도 증손자가 탄생하는 시점에 맞춰 익스플로러6과 작별할 때가 됐다.
김광현 (한국경제신문 IT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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