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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로 보는 독도 |
(서울=연합뉴스) 미디어랩 = '독도의 날(10월 25일)'을 맞아 연합뉴스에서 독도 관련 주요 정보와 사건을 숫자로 정리했다.
독도의 날은 독도 관련 대한제국 칙령이 1900년 10월 25일 제정된 것을 기념해 시민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지난 2000년 처음 제안했다.
▲187,554(㎡): 독도의 총면적. 독도는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주변의 89개 부속도서로 구성됐다. 동도와 서도의 면적은 각 73,297㎡와 88,740㎡다. 동도와 서도간 거리는 151m다.
▲512(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해 독도가 신라 영토로 귀속된 해.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우산은 고구려말에서 높은 지대,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1695(년): 조선 숙종 때의 어민인 안용복의 노력으로 일본 에도 막부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한 해. 에도 막부는 '돗토리번 답변서'에서 울릉도와 독도 모두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00(년): 독도 관련 대한제국 칙령이 제정된 날. 고종이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사로 승격한다는 내용의 '칙령 제41호'를 반포했다. 이 칙령은 울릉도의 관할 구역을 울릉전도 및 죽도와 석도(독도)로 명시했다.
▲1953(년): 독도의용수비대가 홍순칠 대장 외 대원 32명으로 조직돼 독도 경비를 맡았다. 이후 1956년 국립경찰이 독도 경비를 인수했다.
▲1982(년): 가수 정광태씨가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발표한 연도. 이후 행정구역 변경 등에 따라 가사 일부분이 바뀌기도 했다. 2000년 4월 독도의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가사가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일번지'에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바뀌었다.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역시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쪽에'로 수정됐다.
▲336(호): 독도의 천연기념물 번호. 문화재청은 독도를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했고 이를 1999년 천연보호구역으로 변경했다.
▲799-805(번):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의 우편번호. 우정사업본부가 2003년 1월 독도에 '799-805'번의 우편번호를 부여했다. 이어 우정사업본부는 같은해 4월 독도에 첫 우체통을 설치했다.
▲24(명): 10월 1일 주민등록 기준 독도 인구. 호적 기준으로 범위를 넓히면 인원은 2천930명에 이른다. 독도 주민 1호는 1981년 독도에 주민등록을 옮긴 어부 최종덕씨로 최씨는 1965년 독도에 최초로 거주하기도 했다.
▲22만 2천722(명): 올해 9월까지 독도를 찾은 방문객 수. 이는 2005년 일반인에게 독도 입도가 허용된 이래 사상 최대치다. 독도 방문객은 2010년 이후 매년 증가 추세다. 2010년 독도 방문객 수는 11만 5천 명이었으나 2011년 17만 9천 명, 2012년에는 20만 5천 명으로 늘었다. 월별로는 5월과 8월에 독도를 가장 많이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억 8천395(만원): 경북도가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조사·산정한 개별 공시지가에 따른 독도 전체의 땅 값. 이는 전년보다 90.3% 증가한 수치다. 전체 101필지 가운데 최고 지가는 독도리 27번지(잡종지·동도선착장) 외 1필지로 ㎡당 45만 원이다.
▲2(경기): 국제축구연맹이 '독도 세리머니'를 한 박종우 선수에게 부과했던 출전정지 경기 수. 한국 국가대표팀이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서 일본을 2-0으로 꺾고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던 당시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 종이를 들고 경기장 안을 달렸다. 국제축구연맹은 경기장에서 정치적 선전을 금한다는 규정을 들어 박종우 선수에게 A매치 2경기 출전정지와 벌금 3500스위스프랑(약 410만 원)의 제재를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