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포용인사’ 새 바람
세종 대왕이 황희를 중용한 것은 깜짝 놀랄 만한 파격인사였습니다.
세종에게 있어서 황희는 아주 극렬한 반대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내치고 충령대군이었던 세종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황희는 반대운동의 선봉에 섭니다.
결국 삭탈관직은 물론 서인으로 강등되어 유배형을 받습니다.
왕조시대 신하된 자가 다른 사안도 아니고 세자책봉 문제에 끼어들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사실 목숨만 부지해도 행운입니다.
그런데 황희는 5년 넘게 귀양살이 하는 중에 세종에게 부름을 받아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칩니다.
세종은 황희가 강직하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는 점을 알고는 과감하게 국정을 맡긴 것입니다.
세종은 황희로 하여금 6조 판서를 모두 역임시키고 정승만 20년을 연임시키면서 단군 이래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끕니다.
요즘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내 경선에서 서로 감정이 상할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을 실질적인 국정 2인자격인 국무장관에 내정한 것입니다.
오바마는 이미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역시 당내경선 때 자신에게 독설을 퍼부었던 조 바이든을 지명한 바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상초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려면 반대파까지 아우르는 포용인사가 핵심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오바마는 자신이 존경하는 링컨의 인사스타일을 본보기로 한다고 합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의 와중에서도 정치적 라이벌을 중용해 위기를 타개합니다.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윌리엄 수어드를 국무장관에, 역시 당내 라이벌이었던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발탁합니다.
하이라이트는 에드윈 스탠튼을 전쟁장관에 임명한 것입니다.
에드윈 스탠튼은 반대당인 민주당 출신으로서 링컨을 ‘긴팔 원숭이’라고 공공연히 멸시했던 정적이었습니다.
참 대단히 통 큰 포용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흔히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을 합니다.
또 ‘인사가 망사(亡事)’라는 비판의 소리도 종종 듣습니다.
정치가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사람을 잘 쓰는 것이 바른 정치의 요체 중에 요체일 것입니다.
2009년도 새해는 미국 포용인사의 원조 링컨이 탄생한지 200주년이고, 그의 충실한 후계자 오바마가 대망의 취임을 하는 해입니다.
미국발 포용인사가 지구촌 곳곳에도 훈훈한 새 바람을 일으키면 좋겠습니다.
2008년 12월 23일
중앙대 객원교수 안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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