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시스】
수주 전만 해도
오바마 당선인은 시카고의 하이드파크에 있는 단골 미장원에 가서 미용사들과 인사하고 다른 고객들과 똑같이 앉아 머리를 다듬었다. 지난 14년 간 되풀이해온 일이었다.
이번 주에도 그는 머리를 다듬으러 그곳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호를 담당하는 대통령경호국(Secret Service)'이 현장을 점검한 결과 바깥 유리창이 너무 넓고 사람들도 엿보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미용실 행을 포기해야 했다.
뉴욕타임스가 오바마 당선인과 가족들이 대통령 당선 이후 경호상의 문제로 확 달라진 풍경을 조명해 관심을 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4일(현지시간) A섹션 1면과 23면에 걸쳐 “오바마 당선인 가족들의 생활이 영원히 달라지게 됐다. 대선 후보였을 때에도 경호는 있었지만 지금 그와 가족들이 경험하는 경호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제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들의 보호를 받게 됐다”고 소개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제 취임하는 내년 1월20일까지 시카고 교외 하이드파크에서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 거의 2년 간 선거운동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마음껏 노출됐던 그는 이제 두 딸을 학교에 내려줄 때나 친구의 아파트에 있는 체육관에서 농구를 할 때, 대중들의 시야에서 차단된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한다.
알렉시 지아노울리아스 일리노이주 재무장관은 “오바마 가족이 겪는 것은 사적인 ‘정권인수(Transition)'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체육관에 가고 가족들과 영화를 보고 아내와 외식을 하는 일상적인 것들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백악관에 가기 전까지는 가능한 시카고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 인선을 하고 중요한 이슈를 보좌진과 협의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그는 아직 휴가 기간이다. 백악관으로 옮기기 전까지 가족들하고 많이 시간을 보내길 원하고 있다.
그가 워싱턴 행에 거리를 두는 것은 정치적 고려도 있다. 퇴임하는
부시 행정부와 맞닥뜨리는 경우를 줄이고 15일 열리는 G20 회담과 의회가 있는 워싱턴에 있으면 여러 가지 미묘한 문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활에서 이미 그는 대통령의 예우를 받고 있다. 아직 '대통령전용기(에어포스원)'는 타지 않지만 무장 경호원들이 에워싼 방탄 리무진에 탑승하고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 속에 도로를 질주한다. 자택은 오래 전부터 수 블럭에 걸쳐 대통령 경호국에 의해 철통같이 차단되고 폭발물 탐지견도 배치됐다. 요원들이 당선자를 부르는 암호명은 얄궂게도 ‘배반자(Renegade)‘이다.
이웃인 메샤 코들(45) 씨는 예전엔 한 블록이면 갈 길을 세 블럭을 돌아가는 게 조금 불편하지만 내가 투표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 정도 불편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 대학 근처에 있는 오바마 당선인의 자택은 2005년 165만 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길 건너편에는 새로 지은 콘도미니움 단지가 19만달러 짜리부터 있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목장이나 농장, 넓은 대지가 있는 저택 등 일반의 눈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오바마 당선인은 닉슨 대통령 이후 도시에 집을 둔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닉슨의 경우 당선 직후 뉴욕의 아파트를 팔고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의 독립적인 지역에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오바마 당선인은 계속해서 시카고 자택을 유지할 생각이다. 오바마 당선인 자택의 맞은 편 길은 현재 통행이 차단된 상태로 주민들은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보여야 통행이 가능하다. 건너편에 있는 이스라엘 교회측은 시크릿 서비스에 2000명의 교인들과 통상적인 방문자 명단을 제공했다. 이들은 이 지역을 출입할 때마다 금속탐지기 검사대를 통과해야 한다.
오바마 당선인 자택에서 세 가구 건너에 있는 임대료 월 750달러의 아파트 관리인은 “오바마 당선인이 그랜트 파크에서 승리 연설을 한 이후 모든 것이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아파트 회사 사장이 자신의 이름을 기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 경비원은 ”당선되기 전에는 집 주변만 시카고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쳤는데 이젠 시크릿 서비스와 경찰들이 3블록 밖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당선인은 이제 더 이상 패스트리를 사러 메디치에 들르거나 점심을 먹으로 발로이스에 가지 못하고 57가의 책방에서 딸들과 눈요기를 하지 못한다. 그는 아내 미셸과 시카고 시내의 유명식당인 스피아지아에서 호수가 보이는 창가 좌석에서 가리비 요리를 이따금 즐겼다.
올 초 부인의 생일과 지난달 결혼기념일에도 이들 부부는 이 곳을 찾았다. 이 식당의 공동주인이자 주방장인 토니 마투아노 씨는 “그때는 두 사람의 경호원이 두 명이었지만 지금은 30명의 시크릿 서비스 요원들이 온다”고 혀를 내둘렀다.
요즘 당선인의 하루는 아침식사 후 두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일 하는 운동을 위해 리젠츠 파크에 있는 친구 마이크 시그네이터의 아파트 체육관에 들렀다가 정권인수팀 사무실이 있는 클러친스키 페더럴 빌딩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그는 매일 정보 보고를 받는다.
오바마 당선인의 친구로 사무공간을 빌려준 존 로저스 아리엘 투자회사 회장은 “그는 정권인수 작업에 정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달라진 것은 없다. 늘 하던 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다”고 전했다.
당선인의 단골 미용사였던 자리프(44) 씨는 지난 11일 당선인 친구의 아파트에 가서 늘 하던 것처럼 21달러를 받고 머리를 손질했다.
자리프는 “오바마 당선인을 봤을 때 ‘대통령 각하(Mr. President)’하고 불렀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그는 “오바마 당선인에게서 대통령다운 위엄이 느껴졌다. 걸음걸이도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덕분에 자리프 씨도 지역사회의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워싱턴 DC에 헤어살롱을 하나 낼 생각도 하고 있다.
이제 오바마 당선인은 이웃들과 어울려 머리를 손질할 수 없을 것이다. 자리프는 “아마 오바마 당선인이 그 시절을 그리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유명해진 대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관련 기사 있음>노창현특파원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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