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 안중근 의사 관련 글 모음

하얼빈 의거로부터 꼭 다섯 달 후인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됐다. "나는 동양평화를 위해 한 일이니 내가 죽은 뒤에도 한·일 양국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로 협력해주기 바란다." 서른하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한 안중근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는 봄비가 내렸다. 안 의사는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식사와 수면이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고향에서 새로 지어 보낸 흰 명주 두루마기와 검은 양복바지에 우리나라 신을 신고 형장으로 향했다. 검찰관, 전옥(典獄), 통역관, 서기 등이 교수대 전면의 검시실(檢視室)에 앉았다. 전옥 구리하라(栗原)가 사형집행문을 낭독한 후 소노키(園木)가 통역했다. 유언이 없느냐는 물음에 안 의사는 대답했다.

"'나의 행동은 본시 동양평화를 위함인즉 다시 한할 바 없으나 다만 여기 모여선 일본 관헌은 이후 한일친선과 동양평화에 진력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 후 3분간 기도를 마치고 즉시 잠잠히 형대(刑臺)에 올라 '동양평화 만세'를 외치고 엄연히 집행을 당하니 곧 10시 4분이라. 11분을 지낸 후 절명되었는데 의사가 시체를 검사한 후 관에 넣고 우덕순·조도선·유동하에게 작별케 하니 3인이 다 창연히 절을 하여 조상하는 뜻을 표하는 중 우덕순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고…."(경향신문, 1910.4.1.)

안 의사의 최후는 대련에서 발행되던 '만주일일신문'이 가장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 신문은 일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기관지였지만, 안 의사를 존경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기사를 실었다. 3월 26일자 '최후의 면회' 기사는 안 의사가 24일 옥중 면회실에서 정근(定根)·공근(恭根) 두 아우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실과 함께 안 의사의 사진, 옥중 휘호(一勤天下無難事·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것이 없다)를 곁들여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27일자 사회면 머리기사 '안중근의 최후'는 사형집행의 상세한 보도였다. 안 의사가 통역 소노키에게 써 준 휘호(通情明白光照世界)도 실었다. '소통을 명백히 하면 세상이 밝아질 것'이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3월 31일자는 사형 10분 전에 촬영했다는 흰 두루마기 차림의 모습〈사진=안중근의사 숭모회 제공〉과 함께, '안중근사건공판속기록'을 발매한다는 '사고(社告)'를 실었다.

안 의사의 유해는 송판으로 새로 짠 침관(寢棺· 시신을 누인 상태로 안치하는 긴 관)에 안치했다. 사형수의 유해는 보통 허름한 관에 넣었지만, 안 의사의 유해는 특별히 정중하게 모신 것이다.(만주일일신문, 3.27., '안중근의 최후') 그러나 유해는 두 아우의 요구를 묵살하고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인심을 자극하여 과격한 반일운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만주일일, 3.26.)

국내 신문 가운데는 프랑스 신부 드망주(安世華)가 발행인이었던 천주교의 '경향신문'(주간)이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아주 짧은 사실 보도에 그쳤다. 경시청이 안 의사 순국 보도를 통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 발행의 일어신문 '조선신보'(인천)와 '경성신문'(서울)은 아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안 의사 순국 후 사진을 간직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얼굴을 넣은 엽서 '충신 안중근'이 나돌았고, 사진을 사려는 사람이 사진관에 줄을 잇자 경시청은 치안방해라는 구실로 이를 금지시켰다.(대한매일신보, 3.31., 4.6.)

***********************************************************************************************************************************************

대표적 국사학자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안중근 '의사(義士)'를 '장군(將軍)'으로 부르자고 제기한 것이 지난 2008년이었다. 육군은 올해 안 의사 순국 100년을 맞아 지난 23일 '안중근 장군'으로 공식 호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제는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 지휘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명명하고 개관식도 가졌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수십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의사'를 1년에 60명씩 배출되는 '장군'으로 부른다는 것은 안중근 의사를 격하시키는 것"이라고 반대해 호칭 논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장군'인가 '의사'인가. 상반된 두 의견을 싣는다.

▲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한국사

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敵將쏜 장군

'의사'는 日주장 돕는 꼴… 장군도 사상가 될 수 있어… 이순신 장군도 있는데 장군이 의사 아래인가

안중근은 하얼빈 의거 후 뤼순 법정에서 나는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으로서 적장을 쏜 것이므로 나에게 적용할 법은 일본·청국·한국 어느 나라의 법이 아니라 육전(陸戰) 포로에 관한 국제법이라고 네 차례나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에 근거하여 지난 2008년 의거 99주년에 '안중근 의사'란 호칭을 재검토해 볼 것을 제안하였다.

하얼빈 의거 당시 일본 정부의 사건대책본부(외무성)는 사건 직후인 11월 초에 이미 안중근을 극형에 처하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뤼순 법원에 통고하였다. 안중근은 심문과정에서 "군인이라면 직속상관을 대라"고 하자 실명(김두성)을 들었고, 고종 황제의 지시 여부에 대해서도 "있었다"고 답하였다.

포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면 안중근은 무죄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극형 방침을 세웠을뿐더러 대한의군 참모진이 안중근 구출을 위해 국제변호인단을 동원하려 했을 때 외국인 변호인 불채택의 원칙을 기습적으로 공표한 다음, 단 6회의 공판으로 극형을 언도하였다. 일본은 그사이 대한의군 조직의 실체를 확인하였지만, 이를 사실대로 밝히면 그동안 한국인들은 일본의 보호통치를 환영하고 있다고 선전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이를 공판과 연결시키지 못하게 하였다.

'의사(義士)'라는 호칭은 하얼빈 의거 직후 우리 독립운동 진영에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안중근의 법정투쟁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안중근의 영웅적 거사 성공을 기리는 마음에서 의사라는 호칭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조직의 존재보다 개인 행위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주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안중근을 단독살인범으로 몰았던 일본 정부의 의도를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본은 하얼빈 의거 당시부터 안중근을 은인을 배반한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었고, 근자 이라크 사태 때 국내에서도 안중근을 한국 테러리스트의 원조로 간주하는 말이 만만치 않게 나돌았다. 안중근의 법정 투쟁 내용이 다 알려진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나눈다. 전자는 독립운동을 위하여 항거하다가 순국한 경우, 후자는 순국에까지 이르지는 않은 경우이다. 의사·장군·선생 등 호칭의 등급에 대한 공식적 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호칭이다. 엊그제 국가보훈처가 장군은 1년에 60명이나 배출되고 의사는 수십 년에 한 사람 나온다는 이유로 '안중근 의사'란 호칭을 재검토하자는 의견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의사와 장군이란 호칭이 국가적 차원에서 규정이 없다면 보훈처가 굳이 이런 논평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더욱이 장군을 모두 같은 것으로 보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은 1000년에 나올까 말까 한 분인데 어떻게 '장군'이 '의사'보다 아래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학계의 일각에서 사상가로서의 면모 때문에 장군이란 호칭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오랜 '출장입상'(出將入相·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된다)의 전통에서 본다면 전선에서 장군으로 활동하던 분이 옥중에서 숭고한 뜻을 담은 저술을 낼 수도 있지 않은가. 요컨대 안중근이 한 일을 올바로 드러내는 호칭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 김용달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

나. 인류평화 大義천명한 의사로 불러야

'장군'은 거사만을 부각… 교육계몽 활동과 동양평화·인류공영 등 사상가로서의 삶 보아야

요즈음 안중근 의사에 대한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이는 것은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만큼 안중근 의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얘기다. 작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학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안중근 의사 다시 보기'가 진행된 결과이다.

특히 올해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가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비로소 우리가 후손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용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라고 하거나, 안중근 장군이라고 할 때의 역사적 해석과 평가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안중근 장군이라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안중근 의사 자신이 심문 과정에서나 법정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당당히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는 1907년 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한 이후 연추를 중심으로 하는 연해주 의병부대의 우영장으로 맹활약하였다. 여러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하면서 일본군과 수십여 차례 혈투를 벌였다. 그래서 안중근 장군이라고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안중근 의사를 해석하고 평가할 때, 그분의 역동적인 삶과 민족운동, 그리고 사상 전체를 봐야 한다. 하얼빈 의거는 안중근 의사가 평생 견지하고 실천해온 사상이 온축되어 표출된 것이다.

의거 못지않게 안중근 의사가 민족독립과 동양평화, 그리고 인류공영의 숭고한 뜻을 세우고 펼쳐온 과정도 큰 의의가 있다. 의사라는 이름은 나라와 겨레, 나아가 인류 평화에 대한 '대의(大義)'를 세우고, 그 옳은 뜻에 몸을 던져 구현한 사람들에게 붙이는 역사용어이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보면,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자이자 천주교의 박애주의 사상을 실천한 행동하는 양심의 표상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부잣집의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특히 천주교에 귀의한 이후 포교 현장에서 민족대중의 무지와 피폐한 삶을 목격하고는 곧 민중계몽운동에 나섰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와 민족의 양심에 부합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광산회사를 설립하여 산업진흥에도 애썼다. 나아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여 나랏빚 갚기에도 앞장서며 을사늑약 이후 급격히 기울어가는 조국의 운명을 되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는 대한의 독립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동양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광무 황제가 강제 퇴위 되고, 군대가 해산되는 망국의 상황이 도래하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부대를 이끌고 항일전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활동지역에 나타난 한국침략의 원흉이자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처단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빛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동양평화와 인류평화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독립을 보장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알린 것이다.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동양평화의 수호자이자 인류평화의 사표인 '의사'로 불러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곡명 : 핀란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