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와 인간성   얼마 전 이런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 이민 갔다가 삼십여년 만에 잠시 귀국한 어느 재미교포의 얘기였다. 그 교포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살면서 얻은 것은 자유(liberty)고, 잃은 것은 인간성(humanity)이다.”   그는 미국이란 사회가 개인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만끽하게 하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따뜻한 정이 흐르지 않는 단점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포의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터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본고장이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돈벌 수 있다. 성실하게 부지런을 떨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자유스런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을 만든 초기 이민자는 주로 앵글로 섹슨 계열의 영국 이민자들이다. 유럽의 기존 봉건 귀족사회에서 밀려나거나 그것이 싫어서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신대륙에 와서 가진 신념과 가치는 철저히 합리주의적이었고, 그들의 행동은 현실적 가치에 그 바탕을 두었다. 그들은 타인으로부터 속박받지 않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초기 미국 사회의 사회적`철학적 가치는 합리주의에 입각한 경험주의와 공리주의(功利主義)였다.   경험주의는 영국 철학자들이 주장한 영국적 가치다. 경험주의는 인간의 이성적 합리성과 사회에서 습득된 경험적 현실을 중요시하는 철학사조다. 공리주의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최대한 이익을 얻도록 해주고자 하는 가치 인식이다. 신대륙 이민자들은 현실에 입각한 경험 영역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이익을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실현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들의 이런 노력이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실용주의)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낳았다. 진정한 철학은 삶과 생활을 이끌어 가고 개혁할 수 있는 지식이어야 하고, 생활에서 현금처럼 유용한 지식이 진리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적 가치가 프래그머티즘이었다.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적 현실에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가치 인식이었다. 프래그머티즘을 완성한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효용이 있으면 그것이 곧 진리”라고 말했다. 세상에 진리라는 건 모두가 효용이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관념철학이나 형이상학적 과제들은 무의미한 공론이라고 잘라 말했다.   프래그머티즘은 경험적 현실과 실용성을 강조하지만, 그 철학적 기저에는 정의(正義)와 인간중심적인 휴머니즘이 깊숙이 배어있다. 따라서 20세기 전반까지 미국을 지배한 프래그머티즘은 정의 구현과 따뜻한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했다.   휴머니즘 사회를 미덕으로 받들던 미국사회가 20세기 이후 그 가치를 상실해갔다. 급속한 산업화는 개인 상호간에 커뮤니케이션 갈등을 촉발시켜 각 개인을 사회에서 소외되도록 했다. 그 결과 개인은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게 됐다. 여기에다 소득 증대에 따른 경제적 여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성 보다는 물질적 소비에 치중하도록 했다. 자유는 마음껏 누릴 수 있었지만, 인간성은 자꾸만 상실하는 그런 사회로 변모해갔다. 이로부터 나타난 사회적 병리현상이 물신주의(物神主義 Fetishism) 풍조의 만연이다. 물신주의는 뭐든지 돈으로 평가하고 돈으로 가치를 따지는 그런 인식이다. 물신주의가 범람하면서 인간성을 추구하는 휴머니티 사회는 무너져갔다. 오늘의 미국 사회는 바로 이런 사회의 한 단면이다.   왜 물신주의가 현대사회에서 그토록 위력을 떨치는 것일까. 한마디로 돈의 위력이 너무 커서 그렇다. 돈의 위력은 개인 차원에서 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국가적 차원에서는 강대국과 빈국의 차이 만큼이나 크게 난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개인의 인격이나 인품보다는 돈을 얼마나 가졌나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경향은 사람에 대한 평가와 기준을 인성이나 인품에 두지 않고 그가 지닌 물질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물신주의가 휴머니즘을 압도하고 있는 게 오늘의 서글픈 사회적 현상이다.   버락 오마바가 차기 미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고들 한다. 세인들은 인종차별을 극복한 그가 경제 위기 등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슬기롭게 타개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대통령 당선은 단순히 이런 현상적 문제만을 풀기 위해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의 당선은 미국 사회와 전세계가 안고 있는 물신주의적 풍조를 휴머니즘 사회로 되돌려 놓기를 바라는 시민사회의 희망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현상적으로는 오마바의 대통령 당선은 흑백 인종 갈등의 극복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빈부 격차 완화, 계층간 갈등 해소, 지역간 및 국가간 불균형 시정, 글로벌 경제 발전 등을 통해 전 인류가 보다 진일보한 인간다운 삶을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지구적 갈등 해소를 통해 - 기대되는 오마바의 정치력을 통해 -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물신주의가 팽배하는 21세기 사회를 인간성 넘치는 휴머니티 사회로 회복케 하는 변곡점을 찍으려 하고 있다.   오마바의 등장은 지금의 물신주의 사회에서 휴머니티 사회로 돌아가는 시발점이 될 터이다. 그래서 한국인 교포가 말하는 ‘인간성이 상실한’ 미국 사회를 휴머니티 사회로 만드는 것이 오마바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것은 지금의 미국사회가 요구하는 명제이기도 하다.   실용정부라고 하는 우리 정부는 세계가 요구하는 이런 추세에 과연 얼마나 잘 부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주변이 정의롭고 정감 있는 휴머니티 사회로 변모하기를 학수고대해본다.   2008. 11. 11.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Stevie Wonder 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