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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8-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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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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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의장상이 추가되었고 류진춘교수님은 독도캠프에도 참가하기로 하셨습니다. (공동의장 김범일 대구시장, 류진춘 경북대교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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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학생 민주의거 소개
2.28학생민주의거는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의 횡포와 부패, 실정이 절정을 이루고 국민들의 생활이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할 만큼 빈곤과 불법적 인권유린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난 민주적 저항운동이었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했고 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를 맞아 부패·불의로 민심이 이반했음을 알고도 부정선거로 집권을 연장할 것을 기도했다.
그에 따라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가운데 언론과 야당의 탄압은 말할 것도 없고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매표공작을 벌였는가 하면 심지어 여당 후보의 정치집회 때는 대중을 강제 동원하면서 야당 후보의 연설회 때는 청중이 모이는 것을 방해했다. 투표장과 개표장에선 사전투표·대리투표·피아노표 등 부정투개표로 민의를 조작했다.
이같은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위한 부정 음모가 진행되면서 정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60년 2월 28일 대구 시내 수성천변에서 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張勉)박사의 선거 연설회가 계획되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엔 자유당 정권의 악정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소리없는 여론이 전국을 메아리쳤고 대통령 선거엔 야당 후보인 조병옥 박사에 초점이 모였으나 불행하게도 조박사가 서거하는 바람에 부통령 후보인 장박사가 모든 여망을 걸머졌다.
이 때문에 일요일인 그날의 수성천변 유세는 대구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이목이 집중돼 자유당 정권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선거의 패배를 예감한 자유당 정부는 이성을 잃고 고교생인 어린 학생들이 유세장으로 몰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대구 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 등교를 지시했고 학교 당국은 온갖 핑계로 일요 등교를 강행했다.
어린 학생들마저 정치도구로 희생시키려 했던 것이다.
학교에 따라 갑자기 임시시험을 친다고 했고, 단체 영화관람이나 토끼사냥을 간다는 핑계로 등교를 종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자유당 정권의 간계를 간파한 학생들은 불의에 몸을 떨었고 그날 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이같은 자유당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는 집회로 바꾸어 궐기했고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당시 인구가 밀집했던 중앙통을 거쳐 경북도청과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당사, 경북지사 관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악행을 규탄했다.
숱한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고통을 받았고 교사들도 모진 책임추궁을 받았다.
엄벌을 계획했던 정부 당국은 국민들의 분노에 처벌을 완화했고 독재에 움츠렸던 언론도 마침내 2.28학생의거를 보도함으로써 전국의 학생들이 잇따라 궐기하고 시위에 나섰다.
당시 야당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고 어른들도 말못했던 공포 분위기를 어린 학생들이 처음으로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학생들도 아버지와 형님들의 말못하는 사정을 알았던 만큼 죽음을 각오하고 자유당 정권에 육탄으로 항거했던 것이다.
건국 이후 관제 데모만 보아왔고 관제 데모에만 동원되어 왔던 학생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표시를 한 것이며 대구 시민들도 도피 학생들을 숨겨주는 등 뜨거운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2.28의거는 광야를 태우는 한알의 불씨가 되어 들불처럼 번져갔고 3.15 마산의거, 4.19 대학생시위, 4.26 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했다.
2.28대구학생 민주의거는 가난과 독재,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대구 시민정신의 표출이었고 해방과 더불어 수입한 서양식 민주주의의 한국판을 선구한 사건이었다.
동양권에서는 최초로 민권에 의한 민주 성취를 이룩한 4.19는 대구의 어린 학생들이 지핀 위대하고 기적같은 불씨에 의해 발화 되었다는 사실은 청사에 길이 간직돼야 하고 그 정신은 대구가 있는 한 보존돼야 할 것이다.
특히 대구는 일제침략기에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켜 전국민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했고 6.25전쟁 당시 마지막 보루로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였으며 2.28민주의거로 국가의 민주적 정통을 심는 선구적 역할을 해냈다.
근래에 들어 정권이 바뀌면서 대구의 이같은 민주정신의 정통이 정치권에 의해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었다.
이번 2.28 48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대구정신의 한 축이 여기에 있음을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2.28기념사업회홈페이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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