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2호 주민 조준기님의 영전에 드리는 글
"여보시오? 나는 과거에 독도에서 생활했던 조준기라는 사람이요. 독도상호를 가진 사람을 찾는다는 편지를 받고 전화하는 길이요? 도대체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요?"
"반갑습니다! 우리는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을 했던 독도의병대입니다. 이번에 국회에서 독도사랑발표회를 하는데 독도상호로 독도를 문화로 심고 있는 사장님들과 함께 독도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열정을 보여주고 싶어서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우리 한번 만납시다!"
"그럽시다! "
생전 처음 전화로 통화했지만 조준기씨와 독도의병대는 첫 통화에 의기투합했다.
조준기씨는 강릉에서 독도의병대의 국회행사에 참가했고 우리는 오래된 죽마고우를 만난 것처럼 조준기씨와의 만남을 기뻐하면서 감사장을 전달했다.
조준기씨는 해병대로 울릉도에서 근무하다가 결혼과 함께 독도 주민 1호인 장인 최종덕씨의 뒤를 이어 1986년 7월 8일 주소를 독도로 옮기고 독도에서 8년 동안 독도의 바다와 씨름을 했다고 했다.
국회에서 조준기씨를 만난 독도의병대는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독립기념관 시상식장에서 독립기념관장님 표창장 수상 대상자로 조준기씨를 추천했다.
그때가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 후 모처럼 시간 내어 조준기씨가 운영하는 강릉에 있는 독도홍합돌솥밥 식당을 방문 했을 때 조준기씨는 경남에 일하러 가고 없었다.
그 때 식당에 전시되어 있는 독도사진을 보고 감동했던 독도의병대는 독도홍합돌솥밥 식당 사진을 국회에 가지고 가서 독도사랑전시회장에 전시하기도 했다.
세 번째 만남은 KBS아침마당 송년특집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조준기씨는 독도에서 쓴 일기장을 보여주었다.
독도에서 홀로아리랑을 만들던 한돌씨와 같이 생활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이야기할 때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조준기씨를 보면서 그날 방송 진행 중이던 참가자 모두도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조준기씨는 몸은 비록 육지에 있었지만 마음은 독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는 사랑하는 독도를 꿈에도 잊지 못하는 영원한 독도인이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민간인 거주만큼 우리 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없다! 독도 사랑, 독도 지키기가 일회성 운동이 되지 말고 전 국민의 가슴 속에 있어야 일본의 망언에 대처할 수 있다!"
고 말한 것을 온몸으로 실천해서 피 끓는 젊음을 독도에 바쳤던 조준기씨!
조준기씨가 강릉에서 입원하여 암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장거리다보니 빨리 출발하지 못하고 벼르고 별러 강릉병원을 찾아 갔더니 우리가 한 발 늦어 조준기씨는 서울로 가고 없었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고 전화로만 수차례 통화했던 조준기씨가 오늘 오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향년 59세의 젊은 나이에 그는 활활 타오르는 독도사랑 바톤을 사랑하는 아들 강현이와 딸 한별이에게 물려주고 홀로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
사랑하는 조준기 형제님
그대가 부르던 홀로 아리랑 이제 우리가 같이 부르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파도소리만 무성했던 그 젊은 날의 독도를 기억하면서
그대의 뒤를 따라 우리도 묵묵히 독도와 함께 가겠소.
이제 세상 모든 걱정 다 잊으시고 고이 고이 잠드소서
2013. 4. 22
독도의병대는 고인을 추모하면서 삼가 고인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