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310
|
 |
2,179 |
 |
7,742 |
 |
4,070,440 |
 |
|
작성일 : 10-03-22 18:01
오찬미씨 질문에 대한 답변
|
|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166
|
오찬미씨게
"일본에서 내빈예우를 받으신 김점구"라는 표현이 어떤 문제로 나타날지 충분히 생각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표현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결과의 원인제공자는 오찬미씨이며, 저는 적절한 방법으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앞으로 글을 쓸때 특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그래도 질문을 하였으니 답변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홍순칠의 병적기록을 정리하며 많이 생략했는데 덕분에 보충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저의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하시려면 자료를 좀더 보시기 바랍니다.
막연한 추측이나 추정은 옳지 않습니다.
우선 제가 원용한 자료는 국방부에서 발행한 <한국전쟁사> [제04권-총반격작전기]이며
육군본부, 육국기계화학교, 군사편찬연구소를 통해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산전투 당시 한국군에 탱크는 없습니다.
제30장 원산진격작전 / 3. 원산탈환전주(1950.10.8~10.15)
아군
- 병력 16,000명
- 장비 105mm곡사포 10문
- 57mm 대전차포 14문
- 81mm 박격포 20문
- 60mm 박격포 25문
- 3,5인치 로켓포 30문
원산전투 당시 탱크가 1대도 없었다는 근거가 되었는지요.
그럼 오찬미씨의 주장이 왜 근거가 없는지 자료를 떠나 살펴보겠습니다.
원산전투에 탱크가 있었다는 오찬미의 주장
"1950.10.10 원산을 탈환하는 거침없이 북진하는 시기의 전투입니다"
"탱크 하나 없이 어떻게 탱크를 가진 북한군으로부터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이 가능했을까요?"
추정은 아무렇게나 할 수 있습니다.
"거침없는 북진을 했다"
"탱크가 있어야 거침없는 북진이 가능하다"
"탱크가 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추정만 할 뿐입니다.
다음.....
"우리국군의 올라가는 사기와 전투력은 북한군에 우세해졌고 탱크 600대가 증강된 상황에서 북한의 탱크는 대부분 궤멸되고 40여대로 줄어들어 패잔병들은 도주하는 전황이었습니다."
탱크 600대가 증가되었다고 하는데 언제 증가되었는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찬미씨의 주장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950년 10월 이전이어하고, 육군독립기갑연대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홍순칠이 입대하기 전이어야 합니다.
한국군의 기갑부대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다음을 참고하세요
연구원과 직접 통화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육군기계화 학교 http://www.armorsch.kr/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http://www.imhc.mil.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