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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1-28 09:52
독도의용수비대 가짜논란에 대한 독도의병대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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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1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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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용수비대 가짜 논란에 대한 독도의병대 성명서
1.김점구는 의용수비대 33인과 홍순칠 대장을 훼손하는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
2.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해 논란을 제기하는 자는 민원자의 의도와 배후부터 먼저 조사하라!
3.그 동안 독도를 효과적으로 지켜온 숨은 공로자들을 발굴하여 다 같이 포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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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수는 기필코 정화해야!
공업수나 농업수는 기름과 흙탕물이 몇 방울 섞여도 쓸 수는 있지만 생수는 한 방울의 오염도 허용할 수 없다.
애국지사나 지도자는 생수와 같다.
폐수가 환경을 파괴하듯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두를 사장시키는 행위를 상습적, 의도적으로 하고,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위는 폐수와 다를 바 없다.
폐수는 발생지를 추적해서 기필코 적발하고, 아무리 많은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정화시켜서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한다.
독도의용수비대의 가짜 논란은 민원 제기자와 가세한 사람들부터 먼저 검증을 해야 한다.
정부의 요인도 청문회를 통하여 결정하는데 하물며 역사적인 독도의용수비대 대원들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데 있어서 가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상, 의도, 자질, 지난 과거를 조사하고 관계자 역시 역사 앞에서 떳떳한 판단을 내려 기강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일선 담당자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 직할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명확한 규명을 해야 할 것이다.
말을 바꾸는 자와 근거 없는 말을 해서 국가의 기강을 훼손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응징해서 애국지사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의용수비대 33인에 대한 예우와 재검증
평범한 사람으로 일생을 보낼 뻔 했는데 홍순칠 대장으로 인해 영웅이 되신 독도의용수비대원 여러분!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지난날의 인연을 존중하고 배신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세뇌교육도 받지 않습니다. 언제나 더함도 덜함도 없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 앞에서는 대장도 졸병에게 예의를 표합니다. 부모도 먼저 간 자녀에게 예의를 다합니다.
군의 명령체계는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는데 영웅을 만들어준 홍순칠 대장 말은 배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독도수호대 김점구 말만 추종한다면 독도의용수비대는 명령체계가 서지 않는 오합지졸입니까?
홍순칠 대장의 사역을 부정하는 모든 이들에게 묻습니다. 홍순칠 대장이 없이 독도의용수비대가 탄생할 수 있었겠습니까?
홍순칠 대장이 33인 선정 시에 - 뇌물을 받았습니까? - 정치인 되려고 사전 포섭했습니까? - 사유재산을 축적했습니까? 홍순칠 대장이 없었다면 지금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존경을 받고 예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홍순칠 대장 덕분이라면 그 분의 결정을 전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극이 100% 다 맞다고 믿는 사람 있습니까? 그러나 그 사극을 보면서 우리는 주인공을 이해하고 생각을 공유합니다.
홍순칠 대장의 말은 무시하면서 그 분이 이룬 업적에 대한 보상은 100% 누리기를 원한다면 이것을 바라보는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홍순칠 대장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33인을 존경한 나머지 예우하는 마음으로 의용수비대를 33인에 맞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당리당략에 의해 좌지우지 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깨뜨리거나 평가절하하고 나선다면 앞으로 애국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3.아내이자 동지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내이자 동지가 필요했던 홍순칠 대장!
교사발령 대기중이였던 박영희 여사를 만난 이후 홍순칠 대장은 장차 동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청혼을 했습니다.
급기야 반대하는 장인 장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친구들을 동원하고,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부모님까지 동원해서 결국 허락을 받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결혼하면 대구에서 살겠다고 약속했지만 독도지키기가 더 급했던 홍대장은 결혼과 동시에 박영희 여사를 데리고 울릉도로 들어갔습니다.
52년 12월에 결혼하여 울릉도로 바로 들어가 53년 3월에 도동 부둣가에 대형 2층집을 마련하고 이상국, 황영문씨와 아예 같이 살면서 독도를 오고 가며 입도해서 독도 지킬 준비를 했습니다.
신혼의 단꿈도 접어두고, 울릉도에서 교사생활 하면서 혼자 첫아이를 낳고, 아이가 100일이 되어도 남편 얼굴 한번 못 봐도, 가족생활뿐만 아니라 대원들의 생활(조상달 대원 부인이 아팠을 때 병원비 제공)까지 돌봐야 했던 박영희 여사!
출병지 독도에서 활동하는 남편을 도와 본부 울릉도를 품에 안고 살아온 긴세월!
사랑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홍순칠 대장이 가슴으로 맞이한 동지 박영희 여사!
그녀가 독도에 가지 않았다고 가짜라고 하는 사람들은 홍순칠 대장의 마음을 단 한번이라도 헤아려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박영희 여사가 가짜라면 진짜는 누구겠습니까?
3. 국회의원이 독도에서 합토 합수식 한 것은 공업용수!
독도를 사랑하는 열정 때문에 한라산 흙과 백두산 흙을 합토하고 서해 물과 동해물을 합수식 하는 것이 독도에서 위법인 줄 모르고 한 국회의원들의 실수는 공업용수의 기름 한 방울과 같습니다.
소방차, 응급차는 위급한 상황이면 신호를 위반해도 죄를 묻지 않습니다.
하물며 자손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영토가 빼앗길 판인데 기름 한 방울 떨어뜨렸다고 죄를 묻는다면, 독도를 지키고자 나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누가 있겠습니까?
방법적으로는 잘못되었으나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독도까지 찾아가서 독도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표명한 것은 오히려 칭찬해 주어야 할 일 아닙니까?
4. 독도수호대 김점구는 자신으로 인해 죽은 김제의, 이미향 열사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
신한일어업협정이 무리가 있다고 반대 서명운동 하다 죽은 김제의 이미향 열사!
독도수호대 김점구는 독도의병대에게 직접 신한일 어업협정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교수들에게 본인이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신한일 어업협정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바꾼 김점구 대표가 신한일 어업협정이 잘못되었다고 재협상을 주장하다 죽은 김제의 이미향 열사의 뜻을 이어받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제의 이미향 열사의 죽음을 이용해서 모금운동을 계속한 것은 생수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회단체 지도자로서 온당한 일입니까?
5. 독도의병대가 이 일에 참여하게 된 이유
독도지키기 100만 명 서명운동하려고 전국을 순회 할 때에 독도운동 뭐 하러 하느냐고 고함치면서 우리를 막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잘살았는데 할아버지는 독립운동 한다고 총살당하고, 아버지는 쫓겨 다니다 행방불명되고, 우리는 공부 못해서 구멍가게 밖에 할 일이 없고, 친일파들은 한일합방 때는 당당하게 살고, 해방되어서는 건국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요직에 앉아 대대로 잘 살고 있고, 정신대 피해자들이 살아있는데도 피해자들에게는 관심 없고, 피해자들 대신 정치인들이 일본을 용서해주고 있는 지금 독도운동하면 당신도 우리 같이 비참하게 될까 싶어 말리는 거요!”
죽지 못해 산다는 홍순칠 대장의 부인과 가짜라고 공격받는 의용수비대 대원, 유족들의 아픔과 김제의, 이미향 열사 가정의 안타까움을 보고 전 도청 광역시가 다 참여한 200만인 서명운동을 했던 독도의병대에서는 더 이상 좌시 할 수가 없어서, 가장 중요한 독도운동은,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에 동참하고 그들과 고통을 나누며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 가장 큰 독도운동이라 생각해서 독도의병대는 이 일에 나섰습니다.
6. 오마이 뉴스는 정정보도하고 관련자를 문책하라!
정확한 사실 보도,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보도가 언론의 제 1 사명으로 본다면 편협 되고 왜곡된 기사를 내보낸 오마이뉴스는 언론의 사명을 저버렸습니다. 95%거짓말이란 말은 100%거짓말입니다!
6.25 동란의 혼란기에 의병으로 일어나 독도를 지킨 홍 순칠 대장과 대원들을 분열시키고 독도를 지키러 간 것이 아니라 미역 뜯으러 갔다고 하고, 홍순칠 대장의 말이 95% 거짓말이라고 하는 오마이뉴스의 기사는 독도를 뺏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일본 시마네현 홈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림으로써 누구를 위한 보도였는지 짐작하게 하지 않습니까?
독도수호대 김점구의 주장을 바탕으로 구성된 오마이뉴스 기사가 김점구 자신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도록 왜곡 확대된 기사를 보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검증되지 않은 일방의 얘기를 특종인양 보도함으로써 시마네현 홈페이지에 옮겨 실은 일본인들은 시원하게 해주었는지 모르지만 전 국민의 애국심과 독도사랑열정에 찬물을 끼얹은 것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공개 사과하고 진실을 밝혀 보도하고 이 엄청난 실수를 한 당사자들은 제 2,제 3의 실수를 막기 위해 전원 문책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과 후손 앞에서 인정받는 언론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깨어진 장독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어도 흘린 흔적이 있어 조심하지만 언론은 오보로 쏟으면 전 세계에 알려져 정정보도해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거짓을 진실로 알기 때문입니다.
7. 일본이 김점구를 내빈으로 환대한 이유?
1.독도수호대 김점구는 2001년도 사고당시 운전자로서 제의, 미향이가 죽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발명계 독도개발 지원운동본부 000 본부장 제공) 2.김제의 이미향 열사의 의문사는 누군가가 출세하기 위해 의도된 사고다. 이용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조사하자. (2001년도, 장례식에서 제의 고모와 누나 말함) 3.김제의 이미향 열사 사진 독도수호대 홈페이지 올려 사이버분향소 만들고 이들의 죽음을 이용하여 후원해 달라고 후원 계좌 광고(증인 다수) 4.후원금중 단돈 1원도 유족들에게 전달되지 않음 (김제의, 이미향 열사 가족증언) 5.신한일 어업협정 반대 서명 운동했던 박찬종 전 의원을 인터넷을 이용해 집중공격하고(2001년도) 그것도 모자라 박찬종 전 의원이 출마하는 부산에 가서 지하철 광고에 나가 박 전 의원이 잘못되었다고 성토하고 (전국어민연합회 ooo 제공) 6.독도운동가들을 비방하지 말고 각자의 특색대로 활동하도록 하자는 제안한다고 독도수호대에서 제명 (독도사수연합회 ooo 제공) 직접 독도까지 가서 백두산과 한라산의 흙을 합토 하고 서해물과 동해물을 합수함으로써 엄연히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세계인에게 알린 국회의원들을 공격하고 (2005년 3월 18일) 허가 없이 행사하게 했다고 문화재청장과 담당자를 직무유기로 공격하고 (2005년 6월 3일) 의용수비대원들이 가짜라고 부추겨서 존경하는 독도의용수비대 어르신들을 분열시키고 분열시킨 의용수비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국가보훈처 사람들을 공격하고 어르신들이 입을 맞춰 역사까지 왜곡하도록 교육시키고 (2007년 5월 5일 회의록 참조) 경찰이 독도의용수비대 공적을 축소시킨다는 의혹을 가지게 만들고 어르신들에게 용돈을 드려야 하는데 사무비와 회식비를 지출하게 만들고 동북아역사재단 초청으로 시민단체 연합행사 할 때 KBS 삶의 체험현장 팀이 취재하러 온 것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 전체 회의석상에서 동북아 역사재단 담당자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2007년도 울릉도 향군회관 회의장에서) 독도의병대가 순회하면서 전국의 독도 빠진 안내지도를 직접 확인하고 먼 훗날에는 자료싸움이 되니 모든 지도에 100% 독도를 넣자는 주장에 100% 넣을 필요 없고 필요한 곳에만 넣으면 된다고 주장 했습니다
아군을 보면 반갑고 증원군이 오면 사기가 올라가는데 증원군이 오면 반가와 하기는커녕 사기를 떨어뜨리고, 독도를 좀 더 잘 지켜보자고 독도단체들이 주장하는 말에는 딴죽을 걸고 국민의 독도사랑 열정에는 찬물을 끼얹는 독도수호대 김점구는 아군입니까? 적군입니까? 이 사람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도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추천하는 사람들은 아군입니까? 적군입니까?
2007년 2월 24일! 일본 시마네현의 다께시마 날 행사에 함께 갔던 타 독도단체장들은 김점구 대표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빈으로 예우 받지 못했는데 독도수호대 김점구 대표만은 내빈으로 초청받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일본인들이 김점구 대표를 내빈으로 환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8. 김제의, 이미향 열사의 병풍 깔고 모금 운동한 돈은 다 어디로?
김점구 대표는 직접 운전한 승합차의 타이어가 터져 이미향, 김제의 열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많은 기관 단체와 국민이 낸 조의금을 유족들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김제의 열사 대신 아들이 되겠다고 약속해 놓고, 아들 잃고 상심한 부모님이 두 분 다 급성 암에 걸려 제의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제의 어머니가 수호대 사무실과 가까운 한양대 부속병원에 입원해서 암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 입원해 있어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실에 누워 고통 속에 암과 투병 하면서 아들이 개죽음 당했다고 슬퍼하는 제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독도의병대에서는 김제의 열사상을 만들고 독립기념관 시상식에 제의어머니가 직접 참가하여 상을 내리도록 했더니 김점구는 독도의병대에게 왜 상을 많이 만들었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3회 대회 수상자들이 독도를 방문할 때 제의 어머니를 같이 모시고 갔더니 몸이 불편하여 독도에는 같이 가지 못하고 울릉도에 남았다가 지갑을 잃어버려, 마침 김점구가 울릉도에 온 것을 알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김점구 밖에 없어 전화해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도와 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어 꼼짝도 못하는 제의 어머니에게 본인에게 찾아오라는 한마디 말로 전화를 끊은 후, 그 뒤로 전화 한 통화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김제의, 이 미향 열사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사이버 분향소를 만들어 그것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모금운동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족에게는 단 한 푼도 가지 않고 그 돈이 어디에 쓰여 졌는지 궁금합니다.
9. 김점구의 불발탄으로 끝난 100만인 서명운동과 1000만인 서명운동
독도수호대 김점구(당시 사무국장)가 방송에 나와 독도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실시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100만인 서명운동이 시간을 끌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이 독도에 관심 없다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까 봐 최 단시간에 100만인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 당시 구미 시민의 1/10인 2만 명의 서명을 받아 보내자고 독도의병대에서는 독도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6.25참전 용사들과 서명 운동하는 현장을 찾아온 김제의 열사는 “우리는 몇천명 밖에 못 받았는데 부끄럽습니다. 돌아가서 구미처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돌아가서 공주에서 임시총회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에서 전복 사고가 나서 김제의 이미향 열사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독도수호대에서는 김제의 이미향 열사가 세상을 떠난 후 이 서명운동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생업을 중단하고 자녀들의 교육도 포기하고, 차에서 먹고 자면서 전국을 여섯 번 순회하다가, 독도차속에서 식중독에 걸려 죽을 뻔한 고비도 넘기면서, 오직 100만인 서명운동을 최단 시일 내에 마쳐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전 세계 대사관 영사관을 비롯하여 전국의 기관 단체 5만 여 곳에 서명운동 참여 공문을 보낸 끝에 전 도청 광역시가 참여한 가운데 4개월 만에 100만인 서명운동을 달성하고 지금은 200만인 서명을 달성했습니다.
김점구가 100만인 서명운동을 한다고 대대적인 언론광고를 했으면, 최단 시일 내에 100만인을 끝내야 하는데 만 명도 못한 상태에서 중지하고, 다시 10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2004년 12월부터) 언론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은 얼마나 서명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10. 감사원은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감사원의 사명은 부정부패를 조사하고 막는 일이지 부정부패를 감싸주고 키워주는 일은 아닙니다. 만약 부정부패를 묵과하거나 조력한다면 그것은 감사원 직원으로서의 자격이 상실된 사람입니다.
감사원의 명예를 걸고 자격상실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사회정의를 세우는 감사원으로서 국민에게 인정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독도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해서 1만 명도 받지 못하고 중단한 독도수호대의 주장하는 말은 들어주고 독도수호대에서 중단한 것을 200만인 서명을 받은 독도의병대의 공문(접수번호 제1-02477호)은 사장시킨 것은 진상규명위원회나 이 일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질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조직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의 명단, 약력,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김점구가 의용수비대를 존경하고 독도의 앞날을 위해서 이 운동을 하고 있겠습니까? 정확한 사실 규명 없이 일방적인 말만 듣고 김점구의 사기를 북돋아 준다면, 앞으로 김점구가 하는 모든 실수에 대한 책임은 감사원이 떠안아야 할 것 입니다.
친미도 좋고 친일도 좋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카드로 나선다면 그것이 큰 힘이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익에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국에 유리한 발언과 행동으로 상대국의 하수인이 되는 친미, 친일은 이완용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이 일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은 철저한 검증을 받고 참여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1. 해결방안
가-경찰관과 의용수비대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경찰관들은 6.25의 혼란기에 틈을 타서 독도를 침범할 때 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 못지않게 경찰의 공적도 컸지만 공무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의용수비대 만큼 그 공적을 예우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경찰관과 긴밀한 상호협력으로 인해 독도가 지켜졌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경찰의 공적이 재조명 되어야 합니다.
항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분열의 씨가 되고 있는 모든 자료는 경찰이 앞장서서 제공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이뤄져서 군, 관, 민이 협동하여 독도를 지켜낸 이 미담은 길이길이 후손의 칭찬을 받고 귀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당시 독도에서 세상을 떠난 허학도씨를 비롯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독도지키기에 최선을 다한 경찰관들과 일본 순시선을 물리칠 수 있도록 박격포를 제공한 김종원 국장님, 울릉도에서 각종 편리를 도모해주신 울릉경찰서 서장님과 직원 여러분, 첫아이를 출산하고 100일이 지나도 남편이 오지 않아 걱정하는 박영희 여사와 독도를 방문하고 때로는 위문단을 모시고 독도를 방문한 해경 칠성호 함창열 함장님 등 이런 분들을 추천해서 의용수비대와 같이 예우하는 것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많은 경찰관과 공무원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또한 나라가 어려울 때 공무원들도 전심으로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간인으로서 홍순칠 대장은 당시 경찰이나 해경을 추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공적은 이제 경찰 자체에서 조사하고 발굴해서 독도의용수비대 못지않은 포상이 뒤따름으로써 군과 경찰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나- 독도의용수비대와 홍순칠 대장 . 홍순칠 대장으로부터 독도의용수비대의 33인이 시작되었고 (김교식저 도큐멘터리 독도수비대에서 공개 - 79. 2. 15일 발행 탈자-이형우, 허신도(2명), 정원도씨등 의용수비대원 다수가 찬성하여 추가 탈락-박복이-삼사호 배 선원이었는데 중도에 그만 두어서 빼고 뒤에 정재덕으로 바뀜) 진행되었고 마무리 되었듯이 민간인 대원 선정에 관한 모든 권한은 전체적인 일을 알고 있는 홍순칠 대장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독도를 지킨 것이 아닐진대 그것이 후손으로서 돌아가신 홍순칠 대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니겠습니까?
성웅 이순신 장군은 간신들의 모함으로 능지처참을 당할 뻔 했고 안용복 장군은 일본까지 가서 독도를 지킨 죄로 귀양 가서 죽었고 독도를 지키다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 김제의 열사 가정은 아들 잃은 충격으로 풍비박산이 되고 사형수라도 15년이 지나면 시효만료가 되는데 전 재산과 생명을 바쳐 독도를 지켜낸 홍 순칠 대장은 50년이 지난 지금 거짓말쟁이라 평가를 받고 부인 박영희 여사는 죽지 못해 산다고 힘들어 하고 있는 이때에 어느 누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 하겠습니까?
홍순칠 대장을 90% 거짓말쟁이라고 근거도 없이 일방적인 자료로만 평가하여 평가절하 한다면 앞으로 이토오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는 살인자로 몰 것이고 유 관순 열사는 옥중에서 만세 소리 들었느냐고 치고 나올 것이고 논개 열사는 적장과 술 마시다 술기운에 강에 뛰어들었다 할 것이고 상하이 홍구 공원에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 의사는 테러범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2007년 5월 31일 독도의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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