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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9-08 06:12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종교정책-전 모스크바대학 박종효 교수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92  
독도의병대에서는 외국어대학교졸업생중에서 한 때 가장 존경받는 선배로 선정되시고
일생을 모스크바대학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해외에서 독도지키기에 최선을 다하신 박종효교수님이
독도의병들에게 알려달라고 보내오신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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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종교정책

                              역사학 박사(전 모스크바대학교 교수) 朴 鍾 涍

                      1) 종교박해(迫害)와 황제 니꼴라이Ⅱ세 처형

 러시아 옛 달력으로 1917년 10월 25일에 레닌이 영도하는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다수파)』이 혁명에 성공하면서 『노동자와 농민 및 병사 대의원 쏘베뜨』가 구성되어 지방행정과 치안을 맡으면서 실질적으로 세계 최초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정부가 탄생하였다.
 이 혁명정부는 약 10세기 동안 러시아의 국교(國敎)였던 정교회(正敎會)를 비롯해 다른 모든 러시아 국내에 있던 회교(回敎), 유태교(猶太敎), 개신교, 가톨릭교도 『칼 마르크스』의 무신론에 근거해 반혁명분자들의 온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1917년 12월에 공포한 법령으로 러시아 정교회는 국교의 지위를 박탈하고 교회에 속한 사업체와 영지(領地)를 1918년 1월에 모두 몰수하였다. 물론 다른 종교의 자유도 제한하고 외국과의 관계는 폐쇄적인 정책을 견지하였다.
 이 혁명정부의 이른바 『러시아 사회주의 공화국』 쏘베트 인민위원회의장 레닌은 『종교와 투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무신론을 현실정책에 적용하기 시작하여 당과 정부 기관에서는 적극적으로 반종교 선전 활동도 하게 하였다.
 그리고 1918년 3월에는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다수파)』을 『공산당』으로 개칭하고, 전체주의 일당(一黨) 독재체제를 완성하여 6월에는 『예까쩨린부르그』에 연금되어 있던 정교회의 실질적인 수장인 황제(皇帝) 니꼴라이Ⅱ세와 그의 가족을 몰살하고 입고 있던 속옷까지 빼앗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시신(屍身)을 야밤에 차에 실어 산속에 있는 여러 폐광(廢鑛) 중의 하나에 내다 버렸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유골을 찾지 못하고 있다.
                                                               
          2) 러시아 국교인 정교회 폐쇄와 사제탄압(司祭彈壓) 

 10월 혁명이 성공한 이후 1주일 동안은 러시아에 먼저 정교회(正敎會) 성직자들의 체포가 시작되었다. 1918년 1월에는 1917년 말에 혁명정부에서 공포한 법령에 따라 정교회가 운영하는 35,000개의 초등학교와 58개의 신학교 100여 개의 수도원(修道院)을 폐쇄(閉鎖)하였다. 그리고 교회에 속한 영지(領地)와 사업체는 모조리 몰수(沒收)당하였다.
 이런 혁명 당국의 조치에 항거한 사제는 체포하여 그중에 300명을 인민재판에서 반혁명분자로 총살형에 처하고, 1,500명은 같은 죄목으로 투옥했다.
 1919년에도 정교회의 박해(迫害)는 계속되어 앞서 밝힌 반혁명 반동분자(反動分子)의 죄목으로 성직자 1,000명을 총살하고, 800명을 감금시켰다.
 1920년에는 몰수한 교회 건물 중에 551개의 교회는 주택으로, 100개 교회는 상점으로, 52개 교회는 학교로, 71개 교회는 양로원으로 그리고 31개 교회를 병원으로 각각 전용(轉用)하였다. 교회는 이후에도 정부에서 필요할 때마다 몰수하여 창고, 박물관 그리고 각종 문서보관소와 사무실 등으로 이용하였다.
 특히 1922년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총대주교(總大主敎)를 비롯하여 교회 최고 행정기관인 종무원(宗務院)의 성직자들을 체포하고 32명의 대주교, 부 대주교 그리고 성직자 총 4,653명을 반동분자로 몰아 총살했다.
 게다가 수녀(修女)와 수녀수련생 3,447명도 반동분자로 분류하여 함께 총살했다. 그밖에도 내전(內戰) 때에는 10,000여 명의 사제와 신자들도 반 혁명분자로 판정해 총살하였다.
 국호(國號)도 러시아를 1917년 10월 25(구력)일부터는 『러시아 쏘베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1918년 3월에는 혁명 주체 정당이었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러시아 공산당 다수파』로 개칭하였다. 1922에는 또 러시아가 주축(主軸)이 되어 소련(쏘베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였다. 그런데 러시아 쏘베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憲法) 제4조에서는 형식상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활동도 동등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레닌이 1924년에 사망한 다음에는 정교회 신학교를 중퇴한 스탈린이 『공산당』의 총서기가 되면서 오히려 교회에 대한 박해를 더욱 강화하였다. 스탈린은 1929-1936년에는 사제들이 종교 박해정책에 불만을 가진 반동분자로 몰아 사제와 신자 5만 명을 체포하여 그중에 5,000명을 처형하였다. 1937년-1938년 두 해에도 역시 성직자와 신자 20만 명을 체포하여 또 10만 명을 처형하였다. 1939년-1940년 2년간은 약 2,000명을 총살하여 1939년까지 내무인민위원 부(주:현 내무성) 국가 보안부에서는 헌법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도 종교를 완전히 폐쇄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제(司祭)와 주교(主敎)의 직책은 물리적으로 폐지된 상태가 되었으며 신자의 발길이 끊긴 교회는 황폐되어갔다.

          3) 정교회 대성당 폭파(爆破)와 무신론(無神論)의 상징물 건설

  스탈린은 1931년에는 모스크바 시내 크레물린 궁(宮) 건너편 모스크바강(江) 옆에 있던 러시아 정교회 본부건물인 웅장한 『그리스도 구원 대성당』을 폭파하고 대신 그 자리에 거대한 『노천수영장(露天水泳場)』을 건설하였다.
     
 
 이 수영장을 여름에는 물론 겨울에 눈이 내리는 영하(零下)의 날씨에도 온수를 공급해 야외수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그리스토를 부인하고 사회주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전천후(全天候) 전시장(展示場)으로 만들었다.
 공산당은 이 『그리스도 구원 대성당(大聖堂)』을 폭파한 사건 외에도 러시아 황제(皇帝)의 묘(墓)를 파헤치고 또 정교회 성인(聖人)의 유골함(遺骨函)을 파기하였다. 그리고 내무인민위원 부(주:내무성)에 반종교위원회를 두고 잡지 『무신론(無神論)』을 발행시켰다.
 사실 혁명 전에는 러시아에 55,173개의 교회와 25,000개의 공소가 있어 총 80,173개의 교회가 있었으나 그중 4,000개의 교회는 파괴되고 또 몰수해 1941년도에는 교회 건물이 다만 4,225개만 남아 있었다. 게다가 사제는 KGB=КГБ(국가 안전위원회가 감시하고 인사권을 장악)의 손아귀에 있어서 사실상 신자의 발길이 끊긴 교회의 지붕과 뜰에는 잡초만 우거져 폐허로 변했다. 물론 회교 사원과 다른 종교도 사정은 같았다.

              4) 2차 대전 때는 사제(司祭)와 신자를 동원 
   
 독일(獨逸) 나치가 1941년에 소련을 침공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여 봉쇄(封鎖)하고 또 모스크바 근교까지 진격해 왔다. 이때 위협을 느낀 스탈린은 러시아인 90% 이상이 정교회 신자였다는 점에 유념하여 헌법(憲法)에 형식상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활동도 동등하게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탄압 속에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는 신부들을 불러 몰수하였던 교회의 반환을 약속하고 나치의 침공을 저지시키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므로 사제와 신자들은 독일군에 항거하여 빨치산부대를 조직해 참전하였다.
 게다가 다행히 미국과 영국이 연합국으로 유럽에 군사개입을 하게 되어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1944년 5월에 승리하였다. 그리고 1945년 8월에는 연합국으로 대일전(對日戰)에도 참전하여 제2차 대전의 전승국의 하나가 되었다.
  전후 소련은 승전국으로 UN의 안전보장 이사국이 되어 국위를 크게 신장시켰으나 전후에 독립국이 된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생국에 막스·레닌 사회주의 이념을 수출하는 데 열중하면서 미국과의 패권확장과 이념충돌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였다.
 결국, 소련의 폐쇄적인 공산당 독재제도는 이념에만 치중하여 경제는 한계에 도달하였다. 비록 핵무기(核武器)를 보유하고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보유한 초강국이 되었으나 민생분야는 낙후되어 후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5) 불가피한 뻬레스트로아카의 정책
               
 이런 실정으로 인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더는 폐쇄정책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마침내 가르바쵸프 대통령 시대에 와서 1980연대 말부터 개혁(뻬레스트로이까)과 개방(글라스노스찌)정책을 실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개방과 개혁 정책으로 외부의 발전된 모습이 인민에 알려지고 해외에 나가본 인민들은 발전된 모습을 보고 좌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지상의 낙원”이라고 선전한 공산당 정권을 불신하는 풍조가 팽배(澎湃)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공산당 내부에서도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발생하여 결국 마르크스·레닌 사회주의 종주국 소연방(15개 공화국)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 지 꼭 74년이 되는 1991년 12월에 붕괴하고 말았다. 이때 러시아 대통령 옐친은 일당 공산주의 체제를 파기(破棄)하고 정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국가를 대전환한다는 선언을 하였다.

                5) 신생 러시아 연방의 종교정책
         
 소연방 붕괴로 공산당 일당 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난 현 신생 러시아 연방(聯邦)은 정의·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최대의 명절이던 10월 혁명 기념일(양력 11월 7일)마저 폐지하였다.
 그리고 종교도 자유가 허용되어 폐허로 변한 불교, 회교, 개신교는 물론 러시아 정교회 건물도 수리해 촛불이 켜지고 주일이면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때까지 유물론으로 피폐(疲斃)해진 영성(靈性)을 회복하려는 인민들이 모여들어 교회마다 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소련의 지원으로 건국된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주국이 뿌리째 뽑혀 고사(枯死)하였으나 여전히 막스·레닌의 사회주의 정책을 추종(追蹤)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중국도 모든 종교단체는 정부 기관의 엄격한 감시와 지도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주의 소련의 막스·레닌의 사회주의 종교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현 한국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애국가(愛國歌)폐지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한국 가톨릭 “정의구현 사제단(司祭團)”과 정권에 시녀(侍女)가 된 개신교 일부 목사(牧師)와 불교 승려(僧侶) 그리고 열성 신자들은 문 정권의 사회주의 허위 선전과 선동에 현혹되어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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