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사랑운동
독도지키기 200만인
독도사랑운동
대마도 찾기 운동
독도의용수비대를 훼

투표테스트
 
 
 
 

 
손님 (88.♡.208.224)  
손님 (54.♡.150.157)  
손님 (3.♡.233.55)  
손님 (46.♡.168.161)  
손님 (46.♡.168.144)  
손님 (46.♡.168.152)  
손님 (54.♡.150.149)  
손님 (54.♡.150.20)  
손님 (46.♡.168.140)  
손님 (111.♡.148.181)  
손님 (54.♡.150.67)  
손님 (54.♡.148.36)  
손님 (46.♡.168.132)  
 접속자 13명, 회원 0명, 비회원 13명

139
1,119
1,840
1,515,805

작성일 : 19-06-19 08:55
“신장만은 팔지 마세요.”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81  
“신장만은 팔지 마세요.”

남편의 제안으로 독도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100만인 서명만 하면 끝나는 줄 알고 따라 나섰다.
서명운동하면서 정상적인 생업을 중단하고, 5만여 곳에 서명참여 공문 보내고, 승합차에 숙식하면서 전국을 6번 순회하면서 100만인 서명을 초과달성하자, 나는 당연히 끝날 줄 알았다.
중국, 일본, 미국을 방문하여 200만인 서명을 달성해도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독도관련 행사를 살던 집 판돈으로 진행하다가 더 이상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어느 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분들도 계시는데 문득 내 신장 하나쯤은 팔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 몰래 신장을 팔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로 마음먹고 평소에 다니던 내과에 가서 신장 기능 검사를 했다.

다행히 내 신장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에 팔 곳을 물색해서 전화통화까지 끝내놓고 나니 갑자기 부부는 한 몸이어서 아내와 남편이 상대방 몰래 자신의 몸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내 신장이지만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파는 것은 남편을 배신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사실대로 이실직고를 했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깜짝 놀라 당장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면서 반대했고, 나는 남편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어서 앞으로는 절대로 내 마음대로 신장 파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고서야 이 일은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남편이 갑자기 신장을 팔자고 했다.
울릉도 포항을 운행하는 독도페리호가 부도 직전이라는 말을 들은 남편은
“독도 관련 회사가 망하면 일본은 한국인들이 독도에 관심 없어서 독도관련 배 회사가 망한 것으로 오판할 수 있어.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을 예우하는 것, 독도를 직접 관리하고 있는 울릉인들을 돕는 것, 독도관련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모든 일들이 다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독도지키기의 일환이야. ”
하면서 독도페리호 부도 막는 일에 우리가 신장을 팔아 참여하자고 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동안 독도의병대를 돕고자 했던 분들에게 연락해서, 우리를 돕고 싶으면 독도페리호 부도를 막아달라고 말하고, 우리는 아이들 대학등록금 내려고 가지고 있던 돈을 내놓고, 생전 처음 빌려보는 달러돈이라고 하는 돈까지 빌려 보탬으로써, 4번째 돌아오는 어음까지는 극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 돌아오는 마지막 어음이 2000만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상록학교 제자였던 y씨에게 말했다.

y씨를 처음 만난 곳은 구미 상록학교 대입 검정반에서였다.
구미 상록학교는 불우한 가정환경, 개인 사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었는데, 선생님들은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나서고, 학생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배움에 대한 갈증만 있으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공부하기 위해 나선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같이 나누고 싶은 생각에서 나는 그 당시 국사를 담당했었다.
y씨는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교 졸업자격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상록학교 졸업 후에도 독도의병대 사무실에 가끔 놀러왔다.

그 날도 y씨는 놀러왔다가 독도페리호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본인이 그 돈을 구해보겠다면서 갔는데, 며칠 후 다시 찾아와서는 아무래도 힘들겠다고 했다.
y씨로부터 안되겠다는 말을 듣자, 나는 남편의 말대로 신장을 팔기로 작정하고, 신장 사겠다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계속 검색했다.
수 년 전, 내 신장을 팔려고 했을 때는 인터넷에서도 살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속 때문에 다 없어진 것 같았다.
당황하여 계속 찾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y씨가 갑자기 울면서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 제발 신장만은 팔지 마세요. 신장 팔고 건강 잃으면 모든 것은 끝나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 신장만은 팔지 마세요.”
하고 울면서 돌아가서 은행에서 2000만원 융자를 받아 가져왔다.
우리는 그 돈으로 독도페리호 다섯 번째 어음을 막도록 했다.
독도의병대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 이야기를 들은 미국 교포가, 한민족 독도사랑 국회행사장에 와서 남편을 독도페리호 사장으로 내정하면, 본인이 이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뜻밖의 말을 독도페리호 회장에게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자리에서 바로
“여객선에 상식이 없는 내가 사장이 되면 독도페리호는 한 달도 못가서 망합니다. 독도페리호 사장은 바다와 여객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 선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독도의병대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독도의병대가 앞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독도에 갈 때, 요금은 관광회사와 같은 수준으로 받아 주었으면 하는 것과, 독도페리호 주식을 울릉인들에게 팔아 울릉인들이 독도페리호 주인이 되도록 함으로써, 울릉인들이 손님유치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하면서 극구 사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독도페리호 회장이 주식을 울릉인들에게 팔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나누어 가지는 바람에 내부적으로 법정싸움이 나면서 힘을 모아 살려낸 독도페리호가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해 결국 운행 정지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상화되면 그 당시 전국의 의병들이 내놓은 돈은 꼭 갚아 주겠다고 했던 선사 측의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당시 급하게 빌린 달러돈은 1년 동안 매달 수 십 만원씩 갚았는데도 원금이 그대로 있어서 할 수 없이 차를 팔아 원금을 다 갚았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독도의병대의 말을 듣고 그 당시 독도페리호 살리기에 참여했던 전국의 의병들에게 독도의병대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다.

독도의병대 건강만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면서 신장을 보호해준 y씨 덕분에, 그 당시 신장을 팔지 않게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 속에 신장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 때로는 꿈만 같이 느껴진다.

 
   
 

 

 

   전화번호: 054-481-0745, 전송: 482-3314  휴대폰: 011-513-0990

   주소: 730-816  경북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 428-13(독도사랑 작품 전시관)

   Copyright(c) 2004  http://o-dokdo.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