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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19 08:45
“훠어이! 훠어이!”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96  
“훠어이! 훠어이!”

아무리 손을 흔들고 고함을 쳐도 꼼짝도 하지 않던 새들이 눈으로 뭉치를 만들어 던지니 그때서야 퍼드덕 날아갔다.
날아가도 멀리 가지 않고 옆에 있는 논 언덕에 앉아서 놀리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다른 일을 하면 보란 듯이 다시 새까맣게 내려앉았다.

추운겨울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강가에서 떨면서 서 있는 오리떼들을 보고 
“저 오리들은 발이 얼마나 시릴까?”
오리떼들을 쳐다보며 혼자서 걱정스럽게 중얼거리고 있었더니 그 때 곁에서  운전하던 남편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오리야 너는 참 행복하겠다. 네가 발 시릴까봐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하하하......”
그 날 이후 남편은 강가의 오리만 보면
“오리야 너 발 시릴까봐 걱정해주는 사람 또 왔다. 하하하”
하면서 나를 놀렸다.

논 갈러 들어간 소가 빠져 죽은 수구렁 논이라고 소문이 나서 20여 년간 버려졌던 논!
그 논을 개간해서 겨우 모내기를 했지만 가을이 되니 이제는 빠진다고 아무도 콤바인 작업을 해주려고 하지 않아 일일이 낫으로 벼를 베었다.
그 벼를 미처 집에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양양에서 개최된 독도단체대표들 회의에 3일간 다녀왔더니 불쌍하게 생각했던 그 오리떼들이 몰려와 단 한 개의 이삭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렸다.
흙투성이가 된 볏짚만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논을 터벅 터벅 걸으면서 나는 “그래 오리떼들도 먹을 것이 있어야지. 너희들도 먹어야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구미 전역에서 아니 대한민국 전역에서 모여든 것 같은 새들을 보면서 나는 결사적으로 내쫓았다.

“오늘은 업무 분담을 하자. 찬미와 나는 벼를 베러 가고, 당신과 어머니는 배추를 수확하러 가고......”
몸무게가 좀 나가는 내가 빠지는 수구렁 논에서 낫질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미리 알고 좀 수월하게 일하라고 배추밭으로 업무 배정을 할 때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와 나는 모두 기분 좋게 받아 들였다.
벼 수확에 신경 쓰다 보니 배추 수확이 늦어져 며칠 전에 내린 첫눈에 이미 배추 잎이 말라가고 있어서 배추 수확도 시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나는 바로 배추밭으로 갔다.

늦게 심어 속이 차진 않았으나 약간 그늘진 곳의 배추라 쌈배추로는 그만이었다.
재작년에 이 밭의 배추를 먹어 본 메기매운탕 식당주인이 배추가 달고 맛있다고 올해는 밭 전체를 달라고 했지만 선물하고 싶은 곳에 선물하고 남으면 주겠다고 해놓고 미루다 보니, 기다리다 못한 식당주인은 다른 곳에서 배추를 구해 김장을 하고, 600평 넓은 밭에 심겨진 배추들은 갑자기 닥친 한파를 이기지 못해 벌써 말라가고 있었다.
다음날 눈과 같이 다시 한파가 온다는 소식까지 들은 터라 마음이 바빠 점심식사 하러 집에 올 여유도 없이 작업을 계속했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심었는데...... 얼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처음에는 배추모종판에 정성스럽게 배추씨앗을 심어 배추모종을 잘 키웠으나 바빠서 빨리 심지 못하고 그냥 두었더니 자라다 못해 다 시들어 죽어 버렸고, 보다 못해 이웃집에서 배추 다 심고 남은 배추 모종을 주었으나 그것도 바빠서 제때 심지 못하니까 다 죽어버렸다.

우리에게는 독도지키는 일이 농사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다 보니 배추 모종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백 개가 심겨진 배추 모종 한 판에 7000원 하는 것을 구해 심고, 묘목 파는 곳에서 듬성듬성 배추 모종이 나서 팔리지 않아 심을 시기가 훨씬 지난 배추모종을 한 판에 3000원에 사다 심었다.

어렵게 심었기 때문에 더 이 배추를 말라죽게 버려 둘 수 없었다.

“배추 밭에 가서 일하되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당신은 체험학습 하는 차원에서만 일해야 해!”

내가 조금이라도 일을 열심히 했다 하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남편은 헤어지면서 무리하게 일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지만 내일이면 몰려오는 한파에 말라 죽어갈 배추를 생각하면 단 한 포기라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눈에 불을 쓰고 배추 자르고 다듬는 작업을 하다 보니 온 몸이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일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남편에게 SOS를 쳤다.
“무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리했구나! 여기 논일을 중단하고 지금 갈 수 있는 형편이 안되니 배추작업 중단하고 집에 가서 있어!”
‘저 배추를 그대로 두고 가다니! 내일이면 다 얼어 죽는데 그럴 수는 없어!’
대충 다듬은 배추를 40kg 나락 매상 포대에 담다 보니 50포대가 되었다.
더 담고 싶어도 담을 포대도 없고, 어두워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늦게야 집에 돌아온 남편은 바로 배추밭에 가서 배추를 다 싣고 왔다.
배추작업 잘했다고, 칭찬할 줄 알았는데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날 눈 뜨자마자 50포대의 배추를 빨리 나누지 않으면 말라죽으니 독도지키기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전국에 택배로 보내고, 구미에 계시는 분들은 직접 갖다 주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제야 남편이 벌컥 화를 냈다.
“그토록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무리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벼 수확이 늦었는데 그것까지 방해해!”
“지금! 우리는! 배추를! 포기하는 일이 있어도! 저 독도쌀은! 포기해서는 안돼!!!”
“......?”
나는 서슬이 시퍼런 남편에게 더 이상 부탁을 못하고 배추를 마르도록 할 수 없다는 한 가지 생각 때문에 남편 대신 운전면허증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딸에게 부탁해서 배추를 나눠주러 구미 전역을 돌아다니다 그 날 오후 늦게야 돌아왔다.

그때까지 논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던 남편은 다음날부터 눈이 내리자 아예 꼼짝도 하지 않고 방안에만 앉아서 침묵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나에게 나타내는 분노를 벼를 베러 가지 않는 것으로 표현했고, 배추 수확한 다음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 눈이 다 녹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내려 모든 논은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추위를 이기고 그때까지 힘들게 버티고 서있던 벼들은, 계속 내리는 눈을 이기지 못해 끝내 이삭이 점점 내려앉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도 눈이 녹을 기미가 없자 남편이 눈이 뒤덮인 논으로 출근했지만 이제는 수구렁 논에 둔 콤바인이 바퀴가 흙과 같이 얼어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무로 된 바퀴사이 사이에 얼어붙은 진흙은 돌보다 더 딱딱한 돌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진흙은 정으로 쪼아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많이 빠지는 곳은 콤바인 작업을 못하니까 낫으로 베고, 괜찮은 곳은 콤바인으로 수확하려고, 우리 형편으로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중고 콤바인을 사고 수리까지 마쳤는데, 콤바인은 있어도 무용지물이 되었고, 수 천 평의 벼는 겨울 내내 손으로 베어내야 할 형편에 처했다.

그사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헤메던 새들이 눈 덮인 대지 위에 우뚝 서 있는 노다지 방앗간을 알아본 것이다.

“짹! 짹! 짹! 짹!”
“구! 구! 구! 구!”
“끼룩! 끼룩! 끼룩! 끼룩!”새들은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동네방네 소문내더니 친구 새들까지 다 데리고 왔다.

“얘들아 너희들은 체면도 없니? 너희들이 다 먹어버리면 내가 남편에게 혼난단다. 제발 좀 다른 곳에 가거라. 훠어이! 훠어이!”
내 목소리 속에는 배추사건 때문에 화가 나서 꼼짝도 하지 않고 방안에만 있던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 묻어 있었다.

남편이 며칠 동안 콤바인 밑에 기어 들어가 진흙 얼음을 깨어내고 있는 동안 새까맣게 몰려온 염치없는 참새떼, 비둘기떼들은 끝내 수 천 평의 논에 있던 벼 이삭을 열심히 쪼아 먹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그토록 우려했던 낙동강 철새떼까지 몰려와 인정사정없이 쪼아 먹기 시작했다.
새들의 공격 앞에서 눈 때문에 고스러져 새들이 먹기에 안성맞춤이 된 벼 이삭은 점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태풍에 쓰러졌던 독도가바쌀 벼는 독도의병대 가족들이 며칠 걸려  묶어서 일으켜 세웠는데, 그 벼들이 많은 눈에 몸체까지 쓰러지자 눈은 그 위에 내려 벼 이삭을 아예 덮어 버렸다.
눈 속에 파묻힌 벼 이삭만 새들의 먹잇감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쓰러지지 않고 고스러지기만 한 벼 이삭은 깡그리 새들의 먹이가 되었다.

2년 동안 농사지은 독도가바쌀을 광복회원들과 독도 지키는 분들에게 보냈는데, 올해는 100섬 나오는 논에서 일곱섬이 나와 6700여명의 전체 광복회원들에게 보내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을 때 구미 쌀 연구회장님이신 정태근 회장님이 본인이 농사지은 고품질 하이아미쌀을 독도의병대의 일품쌀과 바꿔주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하이아미쌀, 독도가바쌀을 같이 넣어 광복회생존회원님과 독도지키는 분들에게 보내드렸다.

배추가 마르기전에 나누러 다녀야 한다는 내 고집 앞에서
“매복 중에 나타난 적군의 탐색병을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적병이라고 무조건 쏘면 자신의 숨은 위치를 알려 주어 아군이 전멸 당해 버리고 말아! 그래서 전쟁 중의 불복종은 바로 총살이야! ”
하면서 배추를 포기하라고 부르짖던 남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속으로 원망만 했던 내가 새들이 먹다 남긴 지푸라기조차 포기할 수 없어 한파가 몰아치는 논으로 날마다 출근하는 남편을 보면서 그제야 명령 불복종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니라 독도를 지키는 의병이었던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독도쌀은 독도의병대의 독도사랑을 실어 나르는 군자금이자, 욕심으로 독도를 빼앗으려고 쓰나미처럼 밀고 들어오는 저 일본으로부터 사랑으로 독도를 지켜내는 최첨단 무기였다.

6.25 당시 지원군과 국군이 전멸하다시피 했던 얼어붙은 장진호전투에서처럼, 얼어붙은 눈 속에서 나는 5000여평에서 나온 군자금과 무기를 배추 때문에 새들에게 내준 철없는 보초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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