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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13 13:05
어머니 어머니 나의 시어머니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36  
“얘야 내가 불을 때다가 화상을 조금 입었다. 너는 바쁘니 찬미만 보내거라.”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행사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며느리의 입장을 생각해서
며느리는 오지 말고 손녀만 보내라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사무실에서 작업하다가 예감이 이상해서 달려갔더니
시어머니께서는 이마와 손에 큰 화상을 입고, 화상 입은 상처에 소금만 뿌린 채 누워계셨다.

생활비 절약하는 방법으로 비싼 기름대신 버린 나무 주워서 불을 때다보니 
방에 군불 때신다고 싱크대 땔감을 아궁이에 넣었는데
그 속에 다 쓰지 않은 1회용 가스통이 들어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불속에서 폭발한 가스통은 바로 앞에 계시던 시어머니 이마를 때렸고
머리카락에 불이 붙자 손으로 그 불을 끄는 과정에서 시어머니의 이마와 손은 큰 화상을 입으셨다.

당신은 큰 화상을 입으셨지만 행사 준비에 바쁜 며느리 생각해서
손녀만 보내라고 하신 시어머니의 배려에 가슴이 저려왔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물어보자 시어머니께서는
“집에서 군불 때다가 그랬다.”
고 대답하셨고 의사는
“군불은 젊은 사람들이 때도록 하시지 왜 노인이 하시다 이런 봉변을 당하셨습니까?”
했다. 시어머니께서
“젊은 사람들은 독도지키기 하느라고 시간이 없어서 내가 했다.”
고 하시니까 의사가 비웃듯이
“독도는 정부에서 지켜야지. 민간인이 그런다고 지켜질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핀잔을 주었다. 그 날 병원을 다녀오신 시어머니께서는
“그 의사 못쓰겠다! 그 의사는 대한민국 사람 아니냐?”
하시면서 병원에서 화상치료 받는 것을 거부하시고,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치료 받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설득해도 시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기에
우리는 치료한 의사의 말에 화가 많이 나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더 이상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주위 사람들이 감자가 화상에 좋다는 말을 해서
감자를 갈아 붙여드리고 밀가루에 소금을 넣어서 상처에 붙여 드렸다.

어머니가 다치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녀들이 찾아와 병원에 꼭 가시라고 설득하면서 병원비를 드리자
시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이 가고 난 이후 바로 남편과 나를 부르시더니
“나는 다 늙었으니 흉터가 좀 있어도 괜찮다.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면 되니까 이 돈으로 우표사서 전국에 보낼 우편물 빨리 보내거라. 대회는 가까워오는데 우편물을 부치지 못하고 있으면 되겠느냐?”
하면서 병원비를 내손에 쥐어 주셨다.

우리에게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아들 며느리 마음에 부담을 들어주기 위한 시어머니의 배려였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경비와 풍랑을 이유로 독도 수학여행은 생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인 2001년도 8.15 광복절날!

국회의원님들과 독도에 가서 행사하고 돌아오는 썬플라워호 배안에서
 일본에서 독도까지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을 만난 이후,
우리는 독도를 우리 2세들에게 교육하고 문화로 심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에서
2001년부터 전국 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를 시작했다.

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행정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할 정부기관에서 각 학교에 알리는 작업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일일이 전국의 모든 학교와 관계기관에 우편으로 공모대회 소식을 학생들에게 알려야 했고
상을 내리도록 요청하는 것도 일일이 우편으로 연락을 보내야 했다.

이 작업을 하는데 많은 시간, 인쇄비, 우표비 등이 들어가다 보니
때로는 우편물을 만들어 놓고 우표값이 없어 보내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그것을 지켜보신 시어머니께서 병원비를 우표 값으로 내놓으신 것이다.

시어머니의 병원비로 보낸 우편물을 받은 정부의 각 부처와 애국지사기념사업회등 여러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연락을 보내왔는데
유독 여성부에서는 여성부 소관이 아니어서 수상자들에게 상을 내리는 일에 참여할 수 없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여성부에서 참여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자 시어머니께서는
“동해에서 난 고기를 남자들만 먹나? 우리 후손들이 살아야 할 독도와 바다를 우리가 지켜야지. 일본에게 다 빼앗기면 손자, 손녀들이 고기 어디서 잡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밥솥 뚜껑 열어보고 농사지은 쌀 다 빼앗아 가던 것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 행주산성 지키기 위해 나선 여자들과, 적장 안고 남강 물에 뛰어든 논개도 여자 아닌가? 여성부라서 독도를 지키는 일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시면서 화를 내셨다.

끝없이 흘러내리는 화상 상처의 누런 고름!
빨갛게 충혈 된 상처!
눈마저 덮어버린 이마에 불거진 주먹만한 혹!

그 고통을 참으면서 병원비를 우표 값으로 내놓으신 시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나는 왜군 장수를 품에 안고,
 진주 남강 물에 꽃잎처럼 몸을 던진 논개열사를 보았다.

감옥에서 독립만세 외칠 때마다, 무자비한 고문과 구타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얼굴이 되어가도,
끝까지 독립만세를 부르다 세상을 떠나갔던, 17세 소녀 유관순 열사를 보았다.

우리의 여성부는 이 분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다행히 흉터가 생길까봐 걱정했던 시어머니의 얼굴은 하나님께서 성형수술을 한 듯, 이마의 주름은 없애주시고
오히려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얼굴로 치료해 주셨다.

“날마다 눈을 뜨자마자 후손과 민족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시는 시어머니!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이 민족과 후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 주십시오.
시어머니!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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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례 시어머니 독도의병 영전에 드리는 글



독도의병대가 독도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해서 200만인 서명을 달성하고
지금까지 독도지키기운동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들, 며느리 대신 묵묵히 손자 손녀를 돌봐 주시며 가정을 지켜주셨던 시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보릿고개 넘기며 8남매 키우느라 고생하시고,
노년에는 직장다니던 며느리 대신 손자 손녀 키우느라 고생하셨던 시어머니!

단돈 10원도 아껴 쓰시면서, 마을에 아픈 사람 있으면 죽 끓여 방문하셔서
몇 만원씩 넣은 봉투 살그머니 쥐어주고 돌아오셨던 시어머니!

손자, 손녀가 검정고시 공부하고, 독학으로 대학 다니면서
독도지키기 운동하는 부모 돕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하시면서,
아들, 며느리가 못해준 부모사랑 대신, 손자 손녀의 빈 가슴을 할머니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셨던 시어머니!

시골마을에 행상이 와서 잠자리를 요청하면 마을사람들은 일제히 시어머니께 보냈고
시어머니는 이들을 재워주고 먹여서 보내시는 사랑 많은 분이셨습니다.



국내 여러 기관과 전 세계 대사관 영사관까지 5만여 곳에 서명운동 참여 독려 공문 띄울 때는
80세가 넘은 노인이 젊은이처럼 같이 공문 작업에 참여하시고,
가두 서명운동 나갔을 때는 같이 갔던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서명을 받아,
젊은 참가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던 시어머니!

남편이 일꾼은 돈을 받고 일하지만,
주인은 내 돈 들여 일하는 것처럼,
우리는 독도의 주인이 되어 내 돈 들여 독도지키기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자비로 독도지키기운동을 하자고 시어머니를 설득했을 때,
아들의 말에 진심으로 동의해 주셨던 시어머니!

밤늦도록 일하시고 늦은 시간에 고구마 드신 것이 화근이 되어 의식을 잃으셨을 때,
119에 실려 가면서도 깨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우리 아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는 가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병원 정문에서,
이제 괜찮으니 한사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씀하셔서 끝내 119차를 돌이키셨던 시어머니!

남편과 내가 생업 중단하고 전국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독도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교포들을 만나러 외국에 나가고,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국회, 덕수궁, 일본대사관 앞 독도행사 등 각종 독도행사를 진행할 때,
자비로 이 모든 행사를 진행 하느라 집을 팔고, 사무실을 팔아도,
아들 며느리 원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남의 밭을 빌려 농사지어 부식을 대면서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 주셨던 시어머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던 손녀와, 아들, 며느리가,
독도지키기운동 하다가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해 수 년 동안 법원에 불려 다니는 모습을 보다 못해,
처절한 심정으로 독도지키기운동 중단하라면서
서명 받아 보관해둔 서명용지와 독도작품 전시에 필요한 나무이젤을 불태우셨으면서도,
수구렁 논을 개간해 독도가바쌀 100섬을 수확했을 때는,
 세계최초로 개발된 혈압 당뇨에 좋은 귀한 쌀이니
우리가 먹지 말고 광복회어른들과 전국의 독도지킴이들에게 보내자고 남편이 말씀드렸을 때,
기꺼이 허락하셨던 시어머니!

수입이 없는 노인이 되면, 움켜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시어머니께서는 그 당연한 현실마저도 과감하게 뛰어넘어
독도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신 이 시대의 진정한 독도의병이셨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98년을 살아오신 시어머니께서는
독도의병대의 보배이시면서 대한민국의 보배였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독도와 후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 주시기를 기도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20018년 10월 8일 오후 6시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시어머니!
며느리로서 예우해 드리기는커녕 고생만 시켜드리고, 이 세상을 떠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소천하시기 며칠 전,
남아 있는 저희들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사명감당하다가
천국에 오라고 하셨던 말씀,
잊지 않고 가슴속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시어머님!
고맙습니다.

이제 눈물, 아픔,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편안하게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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