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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1-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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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10,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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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성 교수님이 보내오신 글입니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친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의 일대기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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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중동전쟁 6일 전쟁 때 시리아 골란고원 요새의 비밀을 탐색하여 모사드에 알려 이스라엘의 승리를 가져오게 한 전설적인 스파이 엘리 코헨의 이름이 2022년 이스라엘 정부가 그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시리아정부에 공식 요청함으로써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의 이름과 행적이 소상하게 밝혀졌다
1967년에 입수하여 강의하였던 내용과 조금 다른 점과 또 상세히 밝혀진 그의 행적이 공개되어 이를 별도로 다시 게재하며 그가 처형된 1965년 이후 이스라엘 정부의 2022년까지의 57년간 엘리 코헨의 유해를 받기 위한 끈질긴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언젠가 우리도 본받아야 될 역사이기에 이를 게재한다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1화>
2018년 7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에 이스라엘 국민들은 극적인 흥분으로 들끓었다. ‘ 모사드가 적의 손에서 아주 어렵게 목숨 걸고 구해왔다면서 오래된 손목시계를 보여주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첩보기관인데, 2014년부터 이 손목시계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모사드는 그 전부터 이 손목시계 주인의 유해를 이스라엘로 가져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 왔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모사드가 어떻게 이 손목시계를 가져왔을까 국가적 영웅에 대한 국가의 예우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하며 흥분하였다. 모사드가 그토록 찾으려 했던 유해는 누구이며 그는 어떤 일을 하였나? 엘리 코헨은 세계 첩보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6일전쟁이라고 부르는 3차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한 특별한 공로자이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적이라고 부르는 6일 전쟁.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 엘리 코헨은 누구인가?
엘리 코헨은 1924년 이집트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20대에 이집트에 있던 유대인들이 영국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 없는 아픔을 통열하게 느끼면서 유대 민족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고 그 후 1956년 32세의 나이에 엘리 코헨은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엘리 코헨은 백화점에서 회계사로 일하며 아름다운 아내 나비아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조국애가 넘쳤던 그는 모사드를 찾아가 국가를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고 2번이나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모사드는 스스로 찾아온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 인사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2화>
모사드는 엘리 코헨을 거절하였으나 이 후 오히려 모사드가 엘리 코헨을 다시 찾게 되는 일이 생겼으니... 당시에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때문에 무척 골치가 아팠다. 50년대에는 골란고원이 시리아 땅이었고 시리아에서는 골란고원 고지대에 다수의 포대를 설치해놓고 시도 때도 없이 포격을 퍼부어 갈릴릴 주변 키브츠의 민간인 피해가 극심하였다. 그러나 지형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고 더 어려운 문제는 도대체 고원의 언덕 위에 포대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 모사드에 미국 정보기관에서 항공사진을 보내왔는데 골란고원 위를 달리는 군용트럭들을 찍은 사진, 그리고 몇 분 후 찍은 사진에는 그 군용트럭들조차 사라진 사진이었다. 골란고원의 포대는 시리아의 민간인은 물론 일반 군인들도 접근할 수 없는 극비지역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포대를 공격할 수 있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누군가 직접 골란고원 언덕에 올라가 확인해야 하는 것이지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모사드는 골란고원 시리아 포대 문제를 고민하던 중 해결책으로 엘리코헨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모사드는 엘리 코헨을 계속 주시하여 왔는데 엘리 코헨은 아랍어에 능통하고, 부모가 시리아 출신이어서 시리아에 대한 정보도 많고 회계사로 계산이 빠르고 애국심이 뛰어났고, 또한 외모도 출중하였는데 유대인과 아랍인을 합한 외모를 갖춘 미남이었다. ”그대는 조국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겠나?“ ”조국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이후 6개월동안 강훈련에 들어가는데 우선 권총과 소총은 물론 각종 총기 사격훈련부터 시작하여 비밀 폭탄 제조법을 익혔고, 각종 무기, 지상 무기뿐 아니라 전투기까지 한눈에 제원을 익히는 훈련, 무선통신(모르스) 교신법, 시리아 정부와 군 요직 인물의 얼굴과 신상을 외우는 훈련을 하였다. 물론 정체가 드러나고 적에게 체포되었을 때의 대처 법도 훈련하였다. 또 지속적 집중적으로 받은 훈련은 미행을 파악하고 피하는 훈련이었다. 007시리즈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할 만한 것들을 6개월 만에 엘리 코헨이 마스터 하였던 것이다.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3화>
훈련을 마치는 동안 모사드는 엘리 코헨을 ‘카밀 아민 사베트’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드는 작업도 하였는데 이름과 경력은 물론 부모님의 신분도 세탁하였고 당시의 아랍 관행은 사람을 확인할 때 부모님에 관해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무덤을 물어서 어디 (00묘원 C 구역 123번 묘)라고 대답하면 사람을 시켜 무덤을 확인한 후에 신분을 인정하였는데, 이러한 관행에 맞추어 자주 묻는 부모님에 관한 것, 부모님의 무덤 위치까지 (실제 존재하는 묘로) 정하고 수능시험 공부하듯 암기하게 하였다.
카밀 아민 사베트가 된 엘리 코헨은 1961년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날아가서 드디어 본격적인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아르헨티나로 간 것은 그 당시에는 많은 시리아인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에 있는 모사드 요원의 도움을 받아 시리아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카밀 아민 사베트가 된 엘리 코헨이 참석하였는데 거기서 아민 알 하피즈 시리아 대사를 만나게 된다. 아민 알 하피즈는 시리아에서 정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대사를 만난 엘리 코헨은 준비하였던 멘트를 날린다. ”시리아의 살아있는 영웅 알 하피즈 장군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알 하피즈는 감격하였다. ‘이 젊은 사람이 누군데 날 알아볼까?‘ 엘리 코헨은 또 다시 준비하였던 멘트로 알 하피즈에게 사베트라는 젊은이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시리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장군께서 하실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는 장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되겠지요. 시리아를 위해 큰일을 하셔야 할 텐데 그때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장군께서 큰일을 하시는데 필요한 자금을 제가 대겠습니다. 저는 시리아 출신 아르헨티나 사업가입니다.“ 이 행사 이후 엘리 코헨은 시리아 대사와 절친이 되었고 아르헨티나 주재 시리아대사관은 엘리 코헨에게 늘 FREE PASS. 알 하피즈는 어느 날 엘리 코헨에게 ”당신도 이제 시리아에 들어가 할 일이 있소“ 엘리 코헨은 겸손하게 ”그러고 싶지만 저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시리아 내에 인맥도 없고....“ 대사는 그 자리에서 즉시 아민 알 하피즈 이름으로 추천서를 써 준다. 드디어 엘리 코헨은 알 하파즈의 추천서를 가지고 시리아로 날아가고... 물론 이러한 엘리 코헨의 일정은 모두 매일 모사드에 무선암호로 보고되었다.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4화>
수도 다마스커스에 들어간 엘리 코헨은 성공한 사업가답게 시리아 군 참모본부가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 월세로 방을 구하였다. 그 아파트는 웬만한 시리아인들은 살 수 없는 부호들만이 사는 5 room, 4 bathroom 의 최고급 아파트였다. 엘리 코헨은 정관계, 군 고위 인사들을 차례차례 만나면서 친분을 쌓기 시작한다. 알 하피즈 대사의 추천서가 있기에 고위 인사들의 접촉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정계 및 군 고위 인사들 대부분은 엘리 코헨이 모사드에서 스파이 훈련하면서 사진과 글로 암기하였던 인물들이어서 경력, 성격, 장점과 약점 등 신상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사이 엘리 코헨은 시리아 정계와 군 인사들 사이에서 소위 핵인사가 되었다. 매일 저녁과 아침에 접촉한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 내용들을 무선암호로 송신하였고 모사드는 시리아 다마스커스 정계와 군 고위층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게 되었다. 엘리 코헨은 시리아 내에서 골동품 사업가로 행세하면서 시리아 재래시장에서 가구와 골동품을 사서 유럽으로 수출하였다. 무선암호로 보내지 못하였던 군 참모본부에 들어가 찍은 (설계도 등)사진들은 고 가구 중 의자의 다리를 분해하여 구멍을 파고 사진을 담배 말듯이 말아서 집어넣고 다시 조립하여 포장하고 그 가구를 유럽으로 보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물론 수입상은 유럽에 있는 모사드 요원이고, 물품은 유럽에서 다시 이스라엘 모사드 본부에 보내졌다.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5화>
엘리 코헨은 자기 집에 유력인사들을 초청하여 매일 저녁 술 파티를 하였고 술 파티에는 여자도 빠지지 않았다. ”당신 방 많은데 낮에 몇 시간 아파트 방 하나 좀 빌려주면 안되겠어?“ 라고 제안을 받을 만큼 고위 공직자들과 친분이 두터워졌다. 그러다 보니 군 장성들의 불륜 장소로 방을 빌려주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고 아파트 열쇠를 빌려주고 군 장성이 연인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대신 엘리 코헨은 그 군 장성의 사무실에 가서 비서의 시중을 받으며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시간을 보내면서 눈치껏 극비 자료들을 촬영하게 되니....., 모사드는 시리아의 군 주요 동향과 시리아에 러시아의 어떤 무기들이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정도. 그즈음 모사드 본부에서 논란이 생겼는데 한편은 ’고급 정보를 너무 많이 받았는데 이제 그만하자 엘리 코헨의 안전이 불안하다.‘ 또 다른 편에서는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계속해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술집에서 엘리 코헨은 시리아 육군 대위 마지를 만나게 되는 데 마지대위는 술만 마시면 아무도 못 말리는 개망나니가 되는 인물이었다. 계급이 대위밖에 안 되는 젊은 마지가 안하무인으로 막나갈 수 있었던 것은 군 참모총장인 삼촌을 배경으로 두었기 때문이었다. 마지와 술을 마시면서 엘리 코헨은 젊은 장교의 머리에 불을 지핀다. ”마지! 나는 시리아 군인들을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해. 늘 이스라엘 군에게 얻어맞고 전투력도 작전도 없고 특히 무기도 엉터리고...“ 현역 군인인 마지는 열 받아서 ”사베트!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시리아 군이 얼마나 잘 싸우고 무기도 좋은지 알기나 해?“ 엘리 코헨은 한 걸음 더 나가 마지대위가 뚜껑이 열릴만한 말을 해버린다.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6화>
”그런데 왜 늘 골란고원에서 시리아 군이 이스라엘 군한테 당하는 거지?“ 간신히 분을 참고 마지대위는 ”사베트! 당신 정말 뭘 알고하는 소리야? 우리 시라아 군대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공격해서 이스라엘이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있는데...“ 엘리 코헨은 ”그게 정말이야? 난 믿을 수 없어“ 그러자 마지는 ”그럼 내가 당신 골란고원에 데려갈게 가서 두 눈 뜨고 똑바로 봐“ 드디어 엘리 코헨은 민간인 신분으로는 물론이거니와 군인이라도 아무나 갈 수 없는 해발 1000m의 전략요충지인 골란고원 시리아 포대에 마지 대위의 안내와 호위를 받으며 가게 된다. 미군의 항공사진으로만 희미하게 보던 골란고원의 시리아 비밀부대의 땅을 직접 밟고, 강력한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포대를 바로 현장에서 엘리 코헨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순간 포착 시력이 뛰어났던 엘리 코헨은 눈앞에 지나가는 무기들의 종류와 제원을 순간적으로 다 파악하게 되었다. 모사드에서 6개월 흘린 땀이 이렇게 결실을 맺을 줄이야!. 스파이 훈련기간 중에 집중적으로 하였던 훈련은 한 번 보고 외우는 훈련이었다. 눈 앞에 지나가는 무기를 한 번 보고 외우는 것은 물론 웬만한 서류도 한 번 보고 외우는 훈련을 반복하였던 것이다. 드디어 찾아낸 골란고원의 수 백 개 지하벙커, 터널, 터널의 방향과 구조, 그리고 터널 입구의 위치까지 이제 모사드는 골란고원의 시리아 포대를 제대로 파악하고 분석할 자료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엘리 코헨은 골란고원에 올라가서 포대를 세밀하게 살피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포착하게 되었는데........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7화>
골란고원 언덕 위는 나무는 물론 풀도 거의 없고 지하벙커는 무기 외에는 변변한 시설이 없는데, 냉방이 전혀 되지 않으니 얼마나 더운지 병사들은 대부분의 시간에 밖에 나와 있는데 밖이라고 해도 덥기는 마찬가지여서 허허 벌판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쪼이는데 병사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엘리 코헨은 ” 마지! 시리아의 자랑스러운 군인들을 어떻게 이 뜨거운 골란고원에서 땀범벅이가 되어 고통을 당하게 할 수 있습니까?“ 마지는 엘리 코헨의 정확한 지적에 어깨가 내려갔다. ”시리아 정부에 돈도 없는데 그늘 막을 설치해 줄 예산도 없고..“ 엘리 코헨은 ”마지! 여기에 고원에서 잘 자라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어봅시다.“ ”그것도 돈이 들지 않소 나무 살 돈을 어떻게..“ ”내가 시리아의 젊은이들을 위해 나무 값을 감당하겠소“ 감격한 마지는 ” 사베트! 당신이야말로 시리아의 진정한 애국자요!“ 모사드는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수많은 고급정보를 손에 넣기는 했으나 엘리 코헨을 위해 고급아파트, 고급양복, 명품 악세사리 구입, 매일 밤 술파티 등 엄청난 돈이 들어갔는데, 거기에 더해 또 나무 살 돈 60만 파운드를 더 보내라니......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8화>
결국 모사드는 엘리 코헨의 요청을 들어주게 되었고, 시리아 병사들은 골란고원의 벙커 위에 유칼립투스나무를 심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즈음 아르헨티나에 대사로 있던 아민 알 하피즈가 시리아로 귀국하고 엘리 코헨을 만나 중요한 부탁을 한다. ” 1963년 3월 8일 저녁에 당신의 아파트에서 파티를 열어주시오. 그리고 그 파티에 내가 주는 명단의 사람들을 모두 초청해 한 자리에 모아 주시오“ 알 하피즈는 아르헨티나에 있으면서도 엘리 코헨의 정관계와 군고위급 인사들과의 사교활동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 하피즈가 준 명단에는 시리아의 실세 정치인들 장군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었다. 엘리 코헨은 시리아의 실세들이 다 모이는 파티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초호화 파티를 준비한다. 최고의 쉐프들, 최고의 밴드 연주팀, 거기에 참석자 수만큼의 미녀들도 준비시켰다. 그날 밤 초호화 파티, 그러면서 가장 추악한 시간이 지나가는데......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9화>
바로 그 시간 아르헨티나에서 귀국한 알 하피즈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군 참모본부로 들어가는데.... 입구의 경비병들은 갑작스런 기습에 모두 사살되고, 군 참모본부를 장악한 후에 알 하피즈는 대통령궁으로 가서 경비병들을 모두 제압하고 잠자고 있던 나짐 알쿠드시 시리아 대통령을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대통령궁에서 총성이 울리고 바로 옆 군 참모본부에서 총성이 났으나 엘리 코헨의 아파트에서 파티 중이던 군 장성과 고위 정치인들은 감미로운 술과 파티의 음악소리, 그리고 여자들에 묻혀 아무도 총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그날 밤 새로운 시리아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알 하피즈는 엘리 코헨을 만나 ”당신이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소. 당신을 시리아의 국방차관에 임명하고 싶소“,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아직 시리아에 대해 배울게 많습니다. 제가 시리아에 대해 더 많이 배운 다음 조국을 위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 뭘 더 알고 싶은데?“ 이때부터 엘리 코헨은 시리아의 TOP SECRET에 접근하기 시작. 당연히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시리아의 특급비밀을 알게 되고, 그러던 중 사베트 국방차관(엘리 코헨)은 이스라엘 국민 전체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10화>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적은 나라여서(4월에서 10월 사이에 거의 비가 오지 않아 연간 강수량이 700mm로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이다.) 갈릴리 호수가 생명수 역할을 하는데 갈릴리 호수는 수면이 해발 마이너스 210m이고 둘레가 53km나 되어 신약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 또는 디베랴 바다로도 불리었다. 갈릴리 호수의 물은 요단강을 거쳐 지구에서 가장 짠, 그래서 염해라고도 불리는 호수인 해발 마이너스 430m의 사해로 흐른다. 식수와 농업용수, 그리고 공업용수로도 사용되어야 하는 갈릴리 호수의 물은 수원지가 시리아이고 시리아에서 발원 레바논을 거쳐 갈릴리로 흐르는데 시리아에서는 비밀리에 그 물길을 바꾸는 대규모 토목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진행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설적 갑부 모함마드 빈 라덴이었다. 맞다. 모함마드 빈 라덴은 우리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2011년 9월 11일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센터를 완파하고 펜타곤마저 일부 파괴한 테러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미국 본토의 안전 신화를 무너뜨린 테러 집단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이 그의 아들이다. 이스라엘 국가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위해 갈릴리 호수로 들어와야 할 물길을 요르단 쪽으로 돌리는 공사를 모함마드 빈 라덴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극비로 진행하고 있어서 이스라엘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엘리 코헨은 이 엄청난 비밀정보를 알게 되어 긴급히 암호 송신을 하였고.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에서는 큰 논란이 일어났다. ‘당장 군사작전을 해서 공사를 중지시켜야 한다.’ ‘아니다. 극비 공사이며 우선은 시작 단계인데 공사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공사인데 당장 군사작전을 하면 시리아 최고위층에 내부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곧바로 눈치 챌 것이다.’ 이 즈음 엘리 코헨도 서서히 burn out 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불타는 애국심으로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지만 극도의 긴장이 지속된 활동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도 헤어져서 ’타향살이 몇 해던고‘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고 불안한 채로 살아야 하고, 꿈속에서조차 사베트라는 가면을 벗지 못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숨죽인 채 몇 년을 지내왔으니..... 어디까지 가야하나 언제까지 해야하나..... 이러다가 시리아에서 나를 덜컥 국방장관 자리에 앉히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 못 이루는 번민의 밤을 지내고, 그러나 아침이면 다시 카밀 아민 사베트가 되어 시리아의 엘리트 고위 공직자로 업무를 시작하고......... 그러던 중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11화>
꼬리가 길면 밟힌다던가. 그 즈음 시리아 정보국에서도 초 비상이 되어 도대체 어떻게 시리아의 극비 정보를 이스라엘에서 그토록 빨리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까? 장기간에 걸쳐 비밀리에 수사를 해 왔으나 도무지 극비 정보의 누수처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러던 중 다마스커스 주재 외국공관으로부터 간간이 전파의 간섭현상을 유발하는 괴 전파가 발생한다는 신고를 받았다. 그러나 장비와 기술이 부족한 시리아 당국에서는 이런 신고를 받고도 괴 전파의 발신지를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시리아에서는 소련에 방탐 기술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소련은 즉각 방탐 차량에 방탐 요원까지 파견하여 지원하였다. 그러나 엘리 코헨은 당시로서는 워낙 뛰어난 장비를 사용하여 송신하기 때문에 소련의 장비와 기술로도 잡아내기가 어려웠다. 고심하던 시리아 정보국의 대간첩본부는 1965년 어느 날 고의로 다마스쿠스시 전체를 정전상태로 만들었다. Blackout이 되자 엘리 코헨은 건전지를 이용하여 송신하기로 하였다. 그날따라 송신 시간도 길었던 것이다. 모사드에서 스파이 훈련을 받으면서 그토록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이 “송신 시간을 단축하라” 였는데 한 순간의 자만이 결정적 실수가 되었던 것이다. 정보국 무장요원들은 군참모본부 옆 아파트를 완전히 포위하였고, 암호 무선송신을 하던 엘리 코헨은 갑자기 들이닥친 정보국 무장요원들에게 저항할 틈도 없이 체포되었다. 현장에서 특수 무전기와 특수암호조립기도 압수되었다. 시리아 군은 엘리 코헨이 사용한 정교한 무전기를 보고 혀를 내 둘렀다. 수사를 담당한 시리아 군 간부들도 엘리 코헨의 아파트에 와서 놀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상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하였다. 엘리 코헨의 체포에 시리아 정보국에서도 놀랐거니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시리아 대통령 알 하피즈였다. 체포된 엘리 코헨은 열 손가락의 손톱을 다 뽑히는 등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고문을 받았고 이스라엘 모사드에서 엘리 코헨의 체포 사실을 모를 것으로 판단한 시리아 정보국에서는 역정보 공작을 계획하고 엘리 코헨에게 거짓 정보를 보내게 한다. 엘리 코헨은 손톱이 없는 손가락으로 시리아 정보국에서 시키는 대로 암호무선교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사드는 시리아 정보국에서 꾸민 거짓 정보를 코헨에게서 수신하였고, 그러나 엘리 코헨의 무선보고에는 미리 약속한 ’나는 체포되었다‘ 라는 비밀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결국 이스라엘 모사드는 엘리 코헨의 체포를 알게 된다. 어느 국가이든지 일반적으로 상대방에 우리 측 스파이가 체포되면 대개는 ’우리가 보내지 않았다‘ 라든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하는 것이 첩보전의 통례이다. 우리 국가정보원(중앙정보부, 안기부 시절도 마찬가지)에서도 이런 경우 일체 우리 측에서 보낸 것을 시인하지 않는다. 적국에서 처형된 후 다만 이름 없는 꽃으로 내부에서 추모시설에 이름을 올리고(우리 국정원의 이름없는 꽃 19분) 유족을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예우할 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이때 엘리 코헨을 자국에서 파견한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 코헨을 구하기 위한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였다. 이스라엘 전 일간지와 매스컴에 보도된 것은 물론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영향력이 있는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에도 바오로 2세 교황을 통해 시리아를 움직이도록 간곡한 청원을 하였다. 골다 메이어 외무장관은 벨기에와 카나다 등 여러나라에 국제적인 호소를 하였고 소련 외교부에까지도 부탁을 하였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에 수감 되어 있는 모든 시리아 포로들과 엘리 코헨 한 명과 맞교환도 제안하였고, 당시 시리아에서 필요로 하던 트럭을 지원하겠다. 돈을 원하면 원하는 대로 주겠다는 제안도 하였다. “제발 엘리 코헨을 살려서 보내 달라”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헨 12화 마지막 이야기>
그러나 알 하피즈 시리아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듯하다. 대통령 뿐 아니라 정계에 그리고 군부에 친분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시리아의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엘리 코헨. 1965.5.18. 새벽 3시 35분 다마스커스 순교자의 광장(Marjeh Square)이라는 곳에서 수 천 명의 시리아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 코헨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보통은 검은 천으로 얼굴을 씌우는데 반해서 엘리 코헨은 ”나는 죽어서도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죽겠다“라며 검은 천으로 가리는 것을 거부하여 얼굴을 드러내고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엘리 코헨의 마지막 두가지 소원을 시리아 법무부에서 들어주었다. 한 가지는 랍비( Rabbi, 유대교의 율법교사)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니심 인디두라는 랍비가 처형장까지 가는 길을 동행하였다. 또 한가지 마지막 소원은 아내 나비아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나비아. 부디 이미 지나간 일 때문에 울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기를 바라오.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며 거기에 집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오!“ 엘리코헨의 시신은 6시간 동안 광장에 있었고, 엘리 코헨의 처형을 알게 된 이스라엘에서는 벤구리온 총리와 공무원들이 텔 아비브 거리에 나와 추모하였고 이스라엘 전역에서 거의 전 국민이 거리에 나와 엘리 코헨을 추모하였다. 이후 이스라엘 여러 거리 이름이 엘리 코헨의 거리로 명명되었다.
한편 이스라엘은 엘리 코헨이 보낸 정보 즉 갈릴리로 들어오는 물줄기를 시리아로 돌리는 공사를 중지시키는 군사작전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어졌고 이스라엘 공군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시작한 공사현장을 정확하게 폭격하여 시리아의 음모를 무산시켰다.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목표로 시리아와 요르단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로 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사전에 그 정보를 파악하고 1967년 6월 5일 선제공격을 하여 맨 먼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공격하고 그 다음은 요르단,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차례로 공격, 전쟁 개시 6일 만에 나세르가 항복을 선언, 이스라엘이 대승리를 이룬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을 이룬 전쟁이 6일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3차 중동전이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전쟁 승리를 호언장담하면서 시리아와 요르단과 연합하였지만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에 이집트 전투기 450대중 300여대가 파괴되고 공군기지 11곳의 관제탑과 활주로가 파괴되어 이집트는 제공권을 완전히 잃었고, 지상전에서도 압도적인 패배로 이집트 군이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고,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도 차지하고, 꿈에도 그리던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손에 넣게 되었고, 이 전쟁을 통해 난공불락이던 골란고원을 점령하게 되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골란고원 점령이 이틀 만에 끝났는데 - 물론 이스라엘 병사들의 희생도 있었다. - 골란고원의 지하벙커가 어디 있는지 찾을 필요 없이 유칼립투스나무를 표적으로 공격하여 정확하게 지하벙커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시리아 병사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에 바빠서 골란고원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세 다얀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엘리 코헨이 아니었으면 골란고원의 점령은 영원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엘리 코헨을 모사드의 영웅으로 칭했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남쪽으로 시나이반도, 서쪽으로는 가자지구, 동쪽으로는 서안지구(West Bank)를 차지하게 되어 영토가 전쟁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나고 국가안보의 완충지대를 확보하게 되었다.
1977년 7월 29일. 텔아비브에서 멀지 않은 케이파 하바드 마을에서 13세가 되는 남자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성인식이 있었는데 많은 아이들이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들이었다. 소년들은 전통에 따라 성년이 되었음을 다짐하는 토라를 읽었다. Shai(샤이, 히브리어로 선물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소년이 단상에 올라 연설하였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 아버지도 평범한 아버지이기를 바랄 뿐이었어요. 나는 우리 아버지도 우리와 같이 살았으면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얼마나 훌륭하게 일하다가 돌아가셨는지 읽었고, 아버지에 관한 글과 사진들을 모두 모았어요. 그러나 막상 어머니께는 아버지에 관해 한 번도 묻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너무 슬퍼하실까봐 주저했어요. 내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하여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는 나의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충실한 아들이 될 것임을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 약속드려요” 연설이 끝나자 참석자들 모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메나헴 베긴 수상은 눈물도 닦지 못한 채 다가와서 소년을 끌어안았다. 이 소년의 아버지가 바로 이스라엘의 영웅 모사드의 스파이 엘리 코헨이다.
모사드는 다마스커스 순교자의 광장에서 사라진 엘리 코헨의 시신을 찾기 위해 오랜 세월 많은 노력을 들였다. 그러나 적국에서 처형된 자국인의 시신을 찾는 일이 만만한 일인가? 더욱이 시리아에서도 처음부터 엘리 코헨의 시신을 찾으려고 모사드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엘리 코헨의 시신을 여러 곳으로 수차 옮겼던 것이다. 모사드는 53년만인 2018년 엔리 코헨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이스라엘로 가져오는 데 성공하였다.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모사드는 아직도 엘리 코헨의 남아있는 흔적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어디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엘리 코헨의 시신도 찾아서 이스라엘로 가져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Eli Cohen의 이야기는 “The Impossible Spy“라는 제목의 다큐로 TV에서 상영되었고, ”The Spy“라는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모사드의 Master Spy Eli Cohen을 기리는 기념관(Memorial Museum)도 개관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시리아 정부가 그의 유해를 돌려주지 않고 있으나 최근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어 귀추를 주목할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는 중동의 정세다.
건국 초기부터 적대적인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렇게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사람들과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예우해주는 국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오늘날 이스라엘에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가 있고 그 호수에 맑은 물이 있는 것은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이 확보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갈릴리 호수를 보는 기회가 있게 된다면 엘리 코헨의 이름을 한 번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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