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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11 18:20
독도 실효지배에 참여한 제주해녀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013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 52회

 
홍순칠 대장의 책에서 제주도 해녀가 물질했다는 기록을 보고 독도의병대는 제주도청에 공문을 보내어 조사를 부탁했더니 제주도 전역에 공문을 보내 조사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서 독도의병대가 직접 와서 조사해 보라는 담당 계장님의 연락을 받고 우리는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 울릉도를 오고 가면서 직접 수소문해본 결과 오늘 독도가 있기까지는 제주도 해녀의 활약도 매우 컸다고 생각했는데, 제주 해녀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제주도 전역에서 어느 곳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구좌읍에 있는 제주 해녀 박물관도 방문해서 조사했더니 제주 해녀에 대한 다른 자료들은 전시가 잘되어 있었는데 제주 해녀가 독도에 가서 물질을 함으로써 앞으로 국제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독도의 실효지배에 큰 일익을 담당했었다는 자료는 하나도 없었다.
 
제주도 전역을 수소문하며 다니던 중 삼방굴사의 사계 어촌계에서 실마리를 풀었다.
“수원의 장부자를 찾아보세요. 일본에서 같이 물질 할 때 독도에 갔다 왔다고 했어요.
물질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해녀들을 만나서 수원의 장부자를 찾으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경기도 수원인줄 알고 육지로 돌아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원은 경기도 수원이 아닌 제주도 한림읍 수원이었다.
 
제주도를 다시 방문한 해녀 찾기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수원리 이장님의 소개로 저녁 늦게 방문해서 만난 장부자씨는 독도에서 물질한 추억을 가슴에 안고 영원히 독도와 더불어 사는 독도의병이었다.
처음 보는 우리를 독도운동 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환대하며 숙식을 제공하고 다음날은 모든 일을 제치고 같이 독도에서 물질한 해녀들을 같이 찾아 나서기로 했다.
 
밤늦게 이웃집 아주머니가 와서 새벽에 단가가 높은 돈벌이가  생겼으니 같이 가자고 했지만 장부자씨는 우리를 안내해야 하기 때문에 못 간다고 거절했다.
“독도가 밥 먹여 주나요? 다른 사람에게 소개 안하고 어렵다고 일부러 소개하러 왔는데 거절하면 어떻게 해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처음에는 조용하게 설득하다가 나중에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강청을 했지만 장부자씨는 일당 많은 그 일을 포기하고 다음날 수원리 어촌 계장님과 같이 우리를 이곳 저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장부자씨가 소개한 해녀의 안내로 우리는 독도에서 물질했던 해녀들을 여러 사람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부자씨가 살고 있는 수원리 마을 노인회에서도 독도무용을 만들어 공연을 하러 다니고 있었는데 이 분들의 독도사랑열정 또한 대단했다.
 
독도가 러시아를 감시하는 요충지인 것을 일찌기 감지한 일본은 1905년도에 독도를 시마네현에 불법적으로 편입시킨 이후 울릉도, 독도에 망루를 만들고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여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6.25동란으로 정부가 경황이 없는 틈을 타 52년도부터 독도에 말뚝을 꼽고, 우리 국민의 독도 출입을 막고자 했다.
 
이에 분개해서 일어난 홍순칠대장, 독도의용수비대원들과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원들이 독도 지키기를 위해 독도에 막사를 짓던 1954년!
 
울릉도에서 싣고 온 나무를 배에서 바다에 떨어뜨리면 6명의 제주 해녀들은 육지로 밀어주는 수중작업을 해주고, 보급품이 파도로 두절되어 기아선상에 있는 독도경비대에 파도를 헤치며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독도를 지키는데 제주도 해녀들도 참여했다.
 
1955년 30여명의 제주도 협제 해녀들이 독도를 방문하여 딴 미역의 수익금은 당시 독도를 지키던 독도의용수비대의 경비에 보탰다는 기록은 홍순칠 대장의 수기에도 나와 있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해녀들이 독도에 가서 물질을 함으로써 독도 실효지배에 큰 공헌을 했고 지금도 유일한 독도주민으로서 독도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김성도씨의 부인 김신열여사도 제주해녀출신이었다.
 
1953년부터 2008년 지금까지 제주도 해녀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2년에 걸쳐 제주도를 방문해서 발굴하게 된 독도의병대는 감격했다.
 
일본은 독도를 다께시마라고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어 거짓으로 세계인들을 현혹하고 있는데 맏이 제주도 해녀들이 막내 독도지키기에 앞장선 중요한 역사적인 진실은 한민족과 후손에게 알려 귀감을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서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홍순칠대장과 물질에 참여했던 해녀들 중에는 치매로 고생하시는 분도 있고 암으로 입원해 계시는 분도 있었지만 제주도에서 조사를 계속 머무를 수가 없어서 다음에 조사를 하기로 하고 독도의병대는 육지로 철수 했다.
 
그런데 중단할 수 없는 사건이 터졌다.
건강하시던 88세 어머니께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에 실려 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께서 쓰러진 사건은 이미 고령이신 독도의용수비대, 독도경비대, 제주도 해녀분들이 기다려주지 않으신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을 제쳐놓고 다시 제주도를 찾게 했다.
 
이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국민에게 이분들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을 늦출 수가 없어서 2008년 5월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직 건강이 회복되시지 않은 시어머니께는 죄송했지만 시어머니는 손녀에게 부탁한 채 우리는 다시 제주도를 방문 했다.
 
미역을 따러 갔지만 독도막사를 짓는데 바닷 속에서 통나무 운반 작업을 도우면서
“우리도 독도를 지키는데 공을 세웠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다.”
고 말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 독도의병대로부터 그 말을 듣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했던 제주 해녀!
 
2000년 전부터 바닷 속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는 속담을 무색하게 만들었던 제주 해녀!
일본의 만행 앞에서 항거하는데 의연히 앞장섰던 제주 해녀!
전쟁 중에 불탄 학교를 세우는데 앞장섰던 제주 해녀!
 
서독에 간 간호원과 광부들의 땀방울이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초석이 되었듯이 섬으로서 제약 받는 여러 가지 악조건을 바닷 속 자원까지 채취하는 해녀의 열정으로 극복하고, 추위와 연령에 상관없이, 제주도 근해, 독도, 전국의 바다를 누비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해서 외화를 벌어들인 자신의 희생으로 해외 인력진출로 외화를 벌어들여 가정과 제주도 경제를 일으켰고 대한민국 경제 살리기에 이바지 했던 제주해녀!
 
자원 부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제주도 해녀의 고귀한 정신이 지금 시대적으로 더 필요한 이때에 제주해녀의 정신을 후손에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업적을 높이 사고 그 고마움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독도의병대(www.o-dokdo.com)

바라봐 10-03-31 19:18
답변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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