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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1-15 20:13
테러조심 - 41회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295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 41회

독도 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이 100만인이 넘어서자 여러 기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었던 동아일보 기자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굳이 우리 집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두 분 선생님이 수고하고 다니는데 대해 취재했던 기자로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일본 극우파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지요?
아사이 신문사 사장의 죽음이나 독도단체 대원 두 명이 죽은 사고가 우연한 교통사고로 생각이 안됩니다.
두 분의 뜻은 좋지만 이러다가 무슨 변을 당할까 염려되어 말씀 드립니다.
이제 몸도 조심해 가면서 서명운동 하십시오.
혹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요."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리에게 충고하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우리는 말했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이 가치 있는 일을 하다 간다면 그것은 보람된 일이지요.
김제의 열사는 구미를 방문했을 때 6.25참전용사 노인들까지 나서서 열심히 독도지키기 서명운동 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면서, 돌아가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하고 갔는데 1주일 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구미1대학의 행사장에서 구미 1대학 학생들과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우리는 일정을 취소하고 밤새워 서울로 가서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제의 열사가 구미에 왔을 때 행사장에서 서명운동중이라 식사 한 그릇 대접 못하고 보냈는데, 그가 사무실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사실을 알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들이 생명을 다해 지키고자 했던 독도를 이제 남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지키자고 울면서 가두방송하며 벽제 화장터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우리 차 타이어에 이상한 파편 두 개가 꼽혀 출고한지 한 달도 안된 레토나 새 차 타이어가 바람이 빠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파편은 타이어의 골에 꼽혀 잘 보이질 않았고 과속으로 달릴 경우 타이어가 찢어져 펑크가 나도록 꼽혀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국민이 일본에 대해, 우리나라 경찰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유럽 각국이 싸울 때는 적대국이었지만 이제 하나로 뭉쳐 서로 힘이 되고 잘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일본은 경제 대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작은 섬 하나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경제 대국답게 아시아 각국을 연합해서 유럽처럼 더불어 잘 사는데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자님, 위험한 직업 중에 종군 기자직도 있던데 소신을 가지고 기자직을 수행하는 기자들은 어쩌면 모두가 위험한 길을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때 어려움을 당할 수는 있지만 역사와 국민은 그를 인정해 주겠지요. 아무쪼록 기자님도 그런 기자가 되십시오."
 
동아일보 기자는 우리의 말을 들으면서도 마지막 떠날 때까지 우리가 테러 당할까 봐 걱정하는 모습으로 갔다.
 
그 이후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이상한 사고가 여러 번 있었다.

때로는 대구시내에 주차해둔 독도차의 운전 축이 빠져있기도 하고, 운전 중 뒤에서 콘테이너차가 들이 받아 뒤쪽이 다 망가지기도 했다.

서울출장 가기 전에 구미 역 옆에 있던 사무실에서 잠을 자고, 새벽 4시 30분 열차로 서울에 가자고 남편과 둘이서 얘기하고서, 막상 저녁에는 너무 늦어서 집에서 자고, 바로 김천역에 가서 서울행 열차를 탔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서울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 새벽 2시경에 대형화물차가 도로변에 있던 독도의병대 사무실을 들이받아, 사무실이 파괴되었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독도의병대 사무실 앞에 세워둔 독도차를 분실해서 경찰서에 신고하고 전국에 광고해서 3일 만에 찾고 보니, 독도차 문은 충격으로 휘어지고, 차 안에 둔 서류는 다 뒤져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한 번은 서울 독도행사에 참가했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하남에 계시는 남편의 친구 댁에 들렀다가 밤 11시쯤 중부고속도로를 탔던 적이 있었다.
 
곤지암 가까이 왔을 때였다.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독도차 뒷 타이어가 터졌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남편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천천히 독도차를 바깥으로 끌어내었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뒤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충돌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지고 다니는 타이어도 이미 터진 타이어라 갈아 끼울 수도 없어 도로변에 차를 주차 해놓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지난 일을 생각했다.

김제의 이미향열사 장례식에 다녀올 때의 첫 번째 펑크 이후 주위 사람들은 살고 싶으면 독도 운동을 중단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우리는 더 중단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두 번째 펑크는 월드컵 서울 경기 3.4위전 때 일어났다.
상암 경기장에서 가두방송을 마치고 밤 12시경 내려오다가 남편이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무리해서 간 형편이라 도저히 운전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내려오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눈을 붙이고 다시 새벽녘에 차를 운전해 내려오는데, 운전 시작한지 30분도 안되어서 또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타이어가 터져 버렸다.
그때도 뒤따라오는 차들이 잘 피해가서 대형 사고를 면했다.
 
이번에 세 번째 타이어 펑크 사고를 당하자, 우리는 너무 기가 막혀 도로변에 차를 주차해 놓고 그냥 그대로 있었다.
 
좀 있으니 렉카차가 와서 우리는 렉카차에 독도차를 싣고 그가 가는대로 따라 갔다.
렉카차 기사님은 우리를 이천까지 태우고 가서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을 방문하여 알아본 이후에 타이어 교체가 가능한 카 센타에 우리를 부탁하고 갔다.
카센타 사장님이 타이어를 다음날 구해서 교체해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독도차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몰려오는 모기를 어찌 할 수 없어 모기향을 피우고 모기향 냄새 때문에 차 문을 열어놓고 잠을 청했다.
밤새 모기, 더위와 씨름하며 선잠을 자고 나니 다시 우리 독립군들 생각이 간절했다.
‘그들에겐 모기향도 없었을텐데……
우리는 호텔 같은 독도차에서 잠을 청하지만 그들에겐 그런 차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테러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집까지 방문한 동아일보 기자의 간절한 조언이 우리 앞에서 현실이 되어 나타나도 우리는 독도지키기 운동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 선조들이 생명 바쳐 지켜온 이 나라 이 땅!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 시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거짓말을 주장하는 저 일본인들 앞에서 진실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이제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면 생각한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을까?’
‘무사히 잘 돌아올 수 있을까?’
 
순회를 마치고 집이 보이는 마을에 들어서면 생각한다.
‘무사히 살아서 돌아 왔구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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