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322
|
 |
3,291 |
 |
24,032 |
 |
5,671,875 |
 |
|
작성일 : 09-12-20 06:33
|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274
|
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32회
동경에서 저녁8시에 출발하는 심야버스를 타고 히로시마에 내리니 다음날 아침 8시였다.
가는 길에 눈이 내려 빙판이 된 길을 달릴 때는 사고가 날까 봐 가슴 조이기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해서 역 앞 광장에 앉아서 아침 예배를 드리고 친정어머니가 싸 주신 찹쌀 주먹밥을 반찬 없이 먹었다.
내가 일보러 간 사이 비둘기가 날아와 남편이 찹쌀 주먹밥을 조금 주었는데
그것이 비둘기 털에 붙어 내가 도착해서도 비둘기는 털에 붙은 찰밥을 계속 떨어내고 있었다.
비둘기는 찰밥을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하나 남은 나무젓가락을 반 토막 내어
반찬 없는 찰밥을 먹으면서도 귀여운 비둘기를 보며 행복한 아침 식사를 했다.
히로시마는 원폭 투하의 쓰라린 상처를 가진 도시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도록 말끔히 새 단장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평화롭고 여유 있어 보였다.
히로시마영사님을 만났더니 차를 대접하면서
“일본 극우파의 공격이 예상되니 관광객처럼 가장해서 다녀주십시오.”
하시는 것이 아닌가?
영사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남편은 웃으면서
“우리는 관광객처럼 가장하고 다니지는 않겠습니다. 공격이 무서우면 독도지키기 운동에 아예 나서지를 말아야죠. 만약 우리가 공격을 받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하하”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영사님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근심스런 표정으로 직원을 불러 우리를 원폭 투하 현장인 평화기념공원으로 안내하라고 하셨다.
.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 앞에 가니 일본 지하 핵 실험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의 집회와 서명 운동이 있었다.
각 방송사에서 나와 촬영을 하는데 관중은 우리 밖에 없었다.
서명운동 참여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우리도 기꺼이 그 서명에 참여했다.
말은 안 통하지만 우리는 서로 통하는 사람이라는 의미 있는 미소를 띄우며
기념 촬영까지 했다.
공원 한쪽에는 2살 8개월에 원폭 피해를 입어 백혈병에 걸린 소녀 사다코를 기리기 위해 만든 원폭 어린이상이 우뚝 서 있었다.
어린이상 주위에는 사다코가 살기 위해 종이학을 만들다 1000마리를 못 채우고 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전국의 학생들이 보내온 종이학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화를 염원하고 반핵을 상징하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수많은 종이학은 말하고 있었다.
이 종이학을 접은 학생들은 우리 독도를 빼앗으려 할까?
그들의 선조들은 수없이 우리를 침략했고 다시 독도를 내 놓으라 하는 이 때에 이 학생들은 독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을 묻고 싶었다.
우리의 독도가 일본 것이며 꼭 찾아야 할 땅이라 한다면 이 평화공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까지 되어 있는 겐바꾸도무!
원폭으로 파괴된 그 모습을 없애지 않고 보존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이들의 결의가 진실이라면 그들은 결코 우리에게 독도가 일본 땅 이라고 억지 부리지는 않을 것이다.
2002년 1월
독도의병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