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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2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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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 신문사 이대무 기자와 안중근 의사 - 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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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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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21회
하얼빈에 도착해서 흑룡강 조선족 신문사를 방문해 독도지키기 서명운동 참여를 부탁했다.
“우리는 조선족 신문 기자지만 중국 정부의 지도를 받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에는 참여할 수 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독도지키기 운동이 우리만의 일일까요?
이곳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소신 있게 살다 가신 안중근 의거가 있었던 자랑스러운 곳입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살아계신다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실까요?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의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의병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조 앞에 부끄럽지 않는 의병이 되어 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있던 기자들 중에서 한 기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하얼빈 안내를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를 따라 나섰다.
이대무 기자는 우리를 먼저 한인회 사무실로 인도했다.
사무총장님을 소개해서 만나고 기꺼이 서명운동 참여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나왔다.
다음엔 안중근의사가 갇혀 계셨던 곳을 안내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한 곳이라도 더 설명해주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그를 보고 우리는 그가 하얼빈의 숨은 의병임을 깨달았다.
여기 저기 들렀다가 마지막에 안 중근 의사의 의거 장소인 하얼빈역을 방문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 그 당시를 기념하는 비석 하나라도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는데 일본을 의식한 중국 정부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아 다 포기했어요.
그 현장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그 곳에서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던 것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다 사라지겠지요.
한국에서 국사를 편찬하는 분들이 오셨을 때도 제가 안내를 해드렸는데 이것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대무 기자의 안내로 안의사가 거사했던 그 역사적인 장소에 도착하니 그 때의 흔적이라고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중국 전역 마을마다 서있던 혁명 열사비와 같은 그 흔한 비도 하나 세워 놓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소식이 전해졌을 때 중국의 국부 손문은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추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빛나리“
라는 애송시를 읊은 것을 비롯해서 많은 중국 사람들이 안의사를 칭찬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을 의식한 중국이 아무것도 세우지 못하게 해서 비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후손으로서 선조 앞에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이었다면 안 의사가 이런 대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인데......
사형언도로 위협하는 일본인 검사 앞에서도 이등박문이 저지른 죄 15개 항목을 당당하게 진술했던 안중근 의사!
1. 한국의 민비 명성황후를 살해한 죄
2. 한국의 광무(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3. 을사조약(늑약)과 정미7조약(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독립을 요구한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적으로 탈취하고 통감정치체제로 변형한 죄
6. 철도 광산산업과 농지를 강탈한 죄
7. 일본이 제일은행 화폐를 강제로 사용해 한국의 경제를 교란한 죄
8. 한국 군대를 해산한 죄
9.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의 해외유학을 금지하고 식민지화 한 죄
11. 한국인을 말살하고 교과서를 압수하여 분소한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원하고 있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한국과 일본인 사이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으나 한국은 태평무사한 것처럼 천황을 속인죄
14. 대륙침략에 의해 동양평화를 파괴한 죄
15. 일본 천황의 부친 태황제를 살해한 죄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주장은 한 가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끝까지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신 안 중근 의사!
“내가 한국의 독립을 되찾고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3년 동안 해외에서 모진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노력하여 학문에 힘쓰고 농업, 공업, 상업, 등 실업을 일으켜 나의 뜻을 이어 우리나라의 자유 독립을 되찾으면 죽는 자 남은 한이 없겠노라”
하시며 끝까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다가 가신 안중근 의사!
안의사의 의거가 있은 지 한 세기가 다 된 지금까지 아직도 힘을 키우지 못하고, 남북이 갈라져서 일본에게 밀리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죄송해서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2001년 11월
독도의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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