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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1-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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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주해녀여! - 8. 한민족의 어머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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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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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민족의 어머니를 찾아서
2008년 5월 7일!
어버이날이라고 다른 형제들은 부모님을 찾아뵙는데 우리는 아직도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시어머니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다시 제주도로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독도의병대 개인의 어머니였지만 독도의용수비대, 제주해녀는 이 민족의 어머니, 아버지였기 때문에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육지에 나왔을 때
“밤새 안녕?”
이라는 말이 있듯이 노인들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사건이 독도의병대에 일어났다.
함께 주무시던 시어머니가 새벽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119차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결혼할 당시 7남매 중 셋째인 부대장은 부모님의 유산은 다른 형제들에게 돌리고 그 대신 부모를 모시는 축복권은 다른 형제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면서 부모를 모셔야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 당시 좁은 소견으로는 부모를 모시는 것이 축복권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다만 자식으로서 부모는 당연히 모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결혼했었다.
결혼한 이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는 우리와 같이 살면서 내가 교직에 있다 보니 집안 살림을 다 살아주시고 자녀들을 키워주셨다.
독도지키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전 재산을 팔고 나니 88세의 시어머니는 이웃집 논,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셔서 부식을 대고, 가정에서 살림을 살아주셔서 우리가 전국을 순회하며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뒷받침해주셨다.
부모를 모시는 것이 축복권이란 말의 의미를 지금 와서야 실감하며 감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의식을 잃으시니 독도의병대 전 가족의 놀라움은 컸다.
제주도 해녀들을 독도로 초청하는 일 때문에 모 국회의원과 의논하기 위해 서울에 간 사이 며느리대신 아들과 밤늦도록 일하시느라 주무시기 직전 11시경에야 저녁 식사를 드시고 잠자리에 드셨다는 시어머니!
당신을 위해서는 단돈 천원도 마음 놓고 쓰지 않으시면서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 쓰는 근검절약으로 한 푼 두 푼 모은 용돈이 모아지면 어려운 이웃, 병든 이웃, 자녀들을 돕는 일에는 몇 만원, 몇 십 만원도 쉽게 내놓으시던 시어머니!
쉴 새 없이 일하시는 시어머니의 부지런함을 배운 7남매가 모두 다 나름대로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에 자녀들이 서로 모시고 가려고 해도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셋째 아들집이라시며 혹시 다른 자녀들 집에 나들이를 가시더라도 지금까지 한 달을 계셔 본 적이 없으신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가 의식이 없으시다며 빨리 내려오라며 흐느끼는 부대장의 전화를 받고 나는 급하게 그 날 9시에 만나기로 했던 국회의원을 새벽에 만나고 바로 내려왔다.
“병원에 가면 돈이 들어가는데...... 우리 아들은 독도 운동하느라 돈이 없어요. 병원에는 가지 마세요.”
119차안에서 의식이 돌아온 시어머니가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병원비를 걱정하시면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시어머니께 미안했다.
자비로 독도운동을 하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은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에 갔는데 열심히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동안 부모로서 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는 위안을 해 왔었다.
하지만 시어머님이 돈 없는 아들, 며느리 걱정해서 그 위급한 상황에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씻을 수 없는 불효를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결국 시어머니는 응급실에 실려 가셨지만 당신께서 꼭 나오시겠다고 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독도쌀 모도 심어야 하고, 제주 방문 경비도 부담이 되어 해녀를 찾기 위한 제주도 재방문을 좀 미루려고 했었는데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병환을 보면서 노인들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는 더 이상 제주도 방문을 늦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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