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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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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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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동해 바다 작은 섬인 독도를 두고 한일간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왜 이러한 갈등이 계속되어야만 하는가?
왜 대한민국에 그토록 모진 고통을 안겨 준 일본은 자신의 잘못된 권리만 주장하는가?
광무 황제의 직계 손자인 나로서는 가슴이 답답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렇게 잘못된 역사가 만들어졌는가?
그것은 우리가 일본 침략자에게서 조국 강토를 탈환할 때, 국가 기강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역사를 흘려 보낸 탓에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우리 민족이 전승국이냐 전패국이냐의 논란에 관한 입장 정리도 없었고, 그 어떤 조치를 취한 것 조차 없었다.
특히 국내에서는 일본 천황에게 사실상의 면책(?)을 부여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보호조치를 보장해(?)주었기에 이런 참담한 결과가 초대된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자유당 시대에 우리의 임금을 스스로 짓밟아 없앴다.
따라서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요구할 우리의 국내 주체가 없어졌기에 일본이 50년 동안 끊임없이 오만하게 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황실은 아직도 잠재적으로 확실히 살아 있고, 일본 천황의 무도함에 분노하고 있다.
우리의 대한 황실은 단언한다!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저지른 침략 행위에 대해 근본적 사죄가 없고, 추호의 반성도 없이 침략 시대에 만든 독도 강점을 지금도 무엄하게 주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그대로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침략원흉 일본 천황에 대해서 우리의 대한황실종정부는 준엄하게 경고한다.
또한 일본 천황의 만행으로 당하는 대한 황족의 고통을 반드시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당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침략으로 처절한 역사의 고통 속에서 밤무대 가수로 절규하는 나의 참모습을 헤아릴 수 있는지 그대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대한 황족이 당신의 침략으로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가?
당신은 감히 독도를 말하기 전에 오히려 규슈나 시코쿠를 사죄의 뜻으로 내놓아야 옳지 않겠는가?
대한 황족들은 침략원흉 일본 천황의 배상과 사죄를 분명히 요구한다.
나는 독도를 생각하면서, 나와 함께 피눈물을 흘리고 황실 복원의 가시밭길을 걷는 서울교대 안천 교수가 5년 전에 독도에 대한 비망록을 옮겨서 적으며 글을 맺는다.
무도한 일본 천황에게 차분히 반성하라고 들려줄 적절한 이야기라 여겨진다.
일본 천황이여!
눈을 감고 조용히 반성하길 바란다.
바다 위에서의 33노트가 주는 속도감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최신예 해군함정인 경북호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동해를 향해 질주해 갈 때에는, 갑판위에 나가서면 추락할 위험이 있다며 선실내에 있어주길 당부할 정도였다.
육지 위에서 시속 70㎞는 결코 빠른 것이 아니지만, 망망대해에서의 70㎞는 너무도 빠른 속도였고, 그것이 대우조선 기술진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 전자장치의 정예함정임에는 더욱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길이 100m가 넘는 거대한 쇠뭉치가 바다 위에서 이렇게 쏜살같이 달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해군본부의 지원에 의해 정치외교사학회 회원 25명이 동해항을 출발해서 당일 오후 무렵에는 독도 근해에 도착하게 되었다.
장마철이 계속되어 거의 모든 배가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7월초 였지만, 의외로 날씨도 좋았으며 해군당국의 배려와 함정의 장비도 워낙 우수하여 배멀미를 느낄 것을 걱정하고 출발했던 것은 전혀 헛걱정에 불과했고, 상쾌한 몸과 정신으로 독도에 상륙할 수 있었다.
독도를 경비하는 해양경찰의 초소와 관련 부대시설, 그리고 유일한 주민인 조준기씨의 집 등을 보며 검푸른 바다위에 우뜩 선 독도를 오르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위에 놓인 계단을 올라가는 듯 했다.
독도는 오로지 커다란 바윗덩어리로서, 모진 바닷바람과 짠물 먹은 빗밧울에 견디며 강인하게 버틴 풀만이 바윗덩이의 색깔에 푸르름을 안겨주고 있었고 섬 전체가 얼룩무늬 야전복 무늬같이 채색되어 있었다.
동쪽섬과 서쪽섬으로 나뉘어진 7만평 바윗덩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흡사 거대한 수석을 보는 듯했고, 독도의 숙연함과 아름다움을 보는 이의 눈에 심어주는 모습이었다.
특히 동도와 서도의 사이에 있는 기묘한 구멍바위와 주변에 있는 바위의 조화는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았다.
독도가 가진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의미를 강조하는 견해들이 많지만 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는 좋은 풍경이었다.
산꼭대기 곳곳에 펼쳐진 기묘한 모습의 바윗돌을 보는 기쁨과, 안개와 구름 사이로 동양화같이 펼쳐진 섬 아래의 멋진 모습은 보는 사람의 넋을 잃게 할 정도로 아름답기만 하다.
우리의 동쪽 끝에 있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안겨 준 하나의 예술작품 바로 그것이었다.
독도는 발로 상륙하여 눈으로 보고 올 곳이 아니라, 마음으로 상륙하여 벅찬 감동과 뿌듯한 감격으로 다녀오는 곳이라고 해야 옳은 곳으로서 동해 바다에 뜬 빼어난 미술 전시장이었다.
더군다나 독도의 정상에 올라선 감격은 대자연의 또다른 생생한 합창에 의해서 승화된 절정감을 맛보게 한다.
실로 수만 마리가 된다고 할 엄청난 갈매기떼가 이뤄내는 우렁찬 교향악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감흥이 짜릿하다.
해안지대에서 보던 갈매기가 아니라 전혀 세속에 오염됨이 없이 순박하게 살아온 갈매기들이라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도 않고, 섬 전체가 하얀 눈이 온 듯 집단으로 모여 앉아 독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독도가 아름답고, 독도가 좋아서 독도에 산다는 듯이...... 독도가 우리 땅이 된 것은 신라의 22대 지증왕때인 서기 512년으로서 이사부(異斯夫) 장군에 의해서 신라에 편입된 것이며, 그 이전에는 우산국이었다.
생각건대 이사부 장군이 울등도와 독도를 정복하러 갈 때에는 지금부터 약 1500년 전이니 오랜 파도와 싸우며 며칠을 걸려서 갔을 것이다.
울릉도(鬱陵島)는 아마도 가슴이 울렁거린다는 "울렁"의 소리를 빌려 쓴 음차(音借)글이라고 봄이 옳지 않을까? 신라시대에 이미 우리 겨레의 항해술이 이렇게 발달하여 울릉도가 우리 땅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며, 거기서 빤히 보이는 독도에서 우리 조상들의 삶이 이루어졌던 것은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독도를 일본이 자기 땅이라는 억지를 펴는 것은 그들의 오랜 침략행태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우리나라 곳곳의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는 언제라도 그들이 차지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울릉도와 제주도를 자기들 것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정도이다.
숙종때인 1693년에 안용복 장군이 울릉도와 독도를 더럽히는 일본 해적들을 소탕하고 동경(東京)까지 가서 그곳이 우리 땅임을 확인하는 문서를 받아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울릉도는 차마 말할 수 없고 울릉도에서 빤히 보이는 독도만이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그래도 약간의 양심은 있는 것일까?
독도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함정의 갑판에 앉아서 다시금 인간에 대해 되새겨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의 흐름인 듯 하다.
거대한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겸허하게 다시 확인하게 되는 일은, 오만불손하게 살아오면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등 불합리한 표현을 하며 온갖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능하면 자주 가져야 하는 기회라고 하겠다.
인간이 뭇짐승보다 잘난 것이 무엇이고, 소위 말하는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국가에 대해서 말을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국가의 발생기원을 말하는 대표적 학설의 하나가 실력설(實力說)인데 그것은 아마도 잘못 표현된 것이고, 탐욕설이라고 해야 옳다고 본다.
인간의 온갖 사회적 탐욕이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국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강대국들은 오랜 동안 보다 많은 탐욕의 축적에 의한 부도덕의 결정체라고 하는 말에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신대륙 발견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인디언을 학살한 서유럽 사람들이나. 동진정책이라는 선전하에 수많은 북시베리아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러시아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좋은 본보기인줄 알고 흉내내다 2차 대전의 패전으로 좌절된 일본인들의 국제적 침략행위를 정당화할 명분은 언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권이니, 자유, 평등, 평화 등의 좋은 개념은 자기들이 만든 것이고 자기들이 가장 성스럽고 깨끗한 듯이 국제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독도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인들은 그곳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우리나라는 그것에 여러 반증자료를 대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때로는 점잖게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반격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오랜 옛날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벗삼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과 갈매기들은 그런 싸움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왜냐? 울릉도와 독도 사람들은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부르는 것 조차 아주 싫어했다. 그것은 육지 사람들이 처음 듣기에는 도저히 생각못할 의외의 사실이라고 하겠지만 알고보니 너무 옳은 말이었다. 울릉도와 독도 사람들의 조용한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독도는 누구네 땅이라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독도는 독도와 울릉도의 평범한 원주민들과 갈매기가 옛부터 살아온 땅일뿐입니다. 독도는 갈매기와 주민들의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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