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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22 22:55
최근 UN국제재판소의 도서분쟁 판결을 보고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6,593  
최근 UN국제재판소의 도서분쟁 판결을 보고

                                        歷史學 博士  朴鍾涍

1) 독도와 즈메이늬의 유사성과 교훈
금년 2월 헤이그 UN 국제재판소는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두 나라간에
오랫동안 분쟁상태에 있던 흑해의 요충지 즈메이늬에 대한 도서(島嶼)지위와 소유권 그리고 그 주변에 대륙봉 및 경제 전관수역(專管水域)에 관한 s 판결을 내렸다.
예상했던 데로 실효적 점령을 하고 수년간 국제 해양법상 도서 지위를 갖추기 위해 암석으로 형성된 즈메이늬에 여러 시설을 한 우크라이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실제 실리로 보아서는 루마니아의 승리로 돌아갔다.
루마니아는 처음부터 즈메이늬 주변에 약 2,000억 배럴 상당의 석유와 90억 입방 미터의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대륙봉을 획득하는데 있었던 것이지 암석으로 형성된 즈메이늬를 다시 반환 받으려는 의도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즈메이늬가 우리나라 독도와 몇 가지 유사성이 있어 이번 UN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보고 앞으로 일본과의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점에 대해서 미리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독도와 즈메이늬는 암석으로 형성되었다는 특징이 같고, 2차 대전 이후 평화회담에서 연합국의 도서문제가 분쟁의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도 같다.
또 독도가 동해의 중심해상에 위치해 있듯이 즈메이늬도 흑해의 중심부에 위치에 있어 흑해를 왕래하는 선박을 감시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라는 공통점도 같다.
 이런 즈메이늬를 놓고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간에 소유권, 도서지위, 그
주변의 대륙봉과 경제 전관수역 설정 등 양국간에 여러 문제를 놓고UN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즈메이늬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 볼 수 있다. 특히 재판소는 즈메이늬가 2차 대전 중에 소련에 점령당
한 후 1957년”파리 평화조약”에서의 소련에 양도한 역사적인 문제의 확
인과 우크라이나의 해안선으로 인정을 거부하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 앞으로. 독도 주변 해저에 다량 매장되어 있는 제 3
의“연료로 칭하는 가스 하이드레이트”채굴권과 연관해 볼 때 현 독도의 상황과 제2차 한.일 어업협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경각심을 갖게 하는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따라서 독도와 즈메이늬 와는 무엇이 같고 다르며 어떤 역사적인 문제점
이 분쟁 당사자 국간에 있었으며 왜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
는 것은 독도문제 연구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책에 좋은 교훈이 되리라고
믿어 여기에 즈메이늬의에 얽힌 역사적 진상과 재판 결과를 독도(石島)와
와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소개하고자 한다.(주:독도를 한문으로 독도(石島)라고 쓰면
어떨까?.우리 전통문화는 백제문화권과 신라문화문권 그리고 고구려문화권으로 크게 나누어 수 있
는데 백제문화권인 전라도 지방에 가면 어디서나 지금도 돌 다리(橋梁)를 독(石)다리 라고 부른다.
방언이라기 보기 보다는 백제의 언어 유산이라고 보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독도를 전라도 해
녀들이 독도를 그렇게 호칭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일본에서도 꾸릴열도를 즉 센시
마(千島 )를 지시마 라고 읽는다. 원어민의 발음을 따 지시마 라고 읽는 것이다. 우리도 석 혹은 독
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종 황제의 칙령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또 車를 자동차(自動車),
자전거(自轉車)등과 같이 두 음으로 읽을 수 있듯이 백제 전통문화를 이어 음만 다르게 石字를 독
혹은 석으로 읽고 쓰기를 제안한다)

                즈메이늬는 어떤 섬인가?

즈메이늬는 북위 45도 15분, 동경 30도12분의 흑해의 공해상에 위치 해있다. 전체 면적은 25.5 헥타르에 달하고 비교적 평면 암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길이는 615m이고, 폭은 560m다. 높이는 해발 10-41m다.(주: 자료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초목은 암석층이라 자라지 못 하고 사막에서 자라는 가시나무 풀만 바위 틈에서 자라고 있을 뿐이다.
여름에는 타는 듯한 햇빛과 겨울에는 폭우를 동반한 강한 해풍이 자주 분다.조류는 철새들이 멀리 이동 중에 잠시 앉았다 떠나곤 한다.
거리는 루마니아(주:가장 가까운 도시 술리나)에서는 45km, 우크라이나(주:오데사)로부터는 120km로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즈메이늬를 루마니아가 2차 대전까지 소유하였으나 나치 독일에 가담해 구 소련과 적대국가가 되면서1944년 4월에 구 소련 해병대가 루마니아의 수비대를 격퇴하고 점령해 1947년 파리 평화조약에서 루마니아로부터 소련 수상 스탈린이 빼앗아 1948년 5월 23일 외교협정을 체결하고 구 소련이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 소련이 1993년 붕괴되고 루마니아도 소련의 위성국가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C)에 가입하면서 2004년 9월 16일 즈메이늬가 암석이냐? 도서냐?는 문제를 놓고 UN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대륙봉과 배타적 전관수역 문제 등으로 제소하면서 그 판결에 동유럽은 물론 흑해 연안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주황색이 우끄라니나, 회색이 루마니아  화살표시가 즈메이늬 섬이다.)

UN국제 재판소는 중용의 전통적인 관례를 존중하면서 양 당사국의 주장과 주변국가의 의견을 듣고 5년간의 심의를 거처 지난 2월 3일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 즈메이늬는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영토로서 인정하고 또 루마니아가 주장한 UN 해양법상 도서지위를 다 갖추지 못한 암석으로 우크라이나 해안으로 인정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인정하였다.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즈메이늬의 해안선을 우크라이나의 해안선으로 보지 않고 다만 즈메이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12해리만 인정하고 그 주변의 배타적 전관수역과 대륙봉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양국의 해안선만을 중심으로 해상경계선을 확정시켜 주었다.
이 결정으로 즈메이늬 주변에 매장된 대륙봉(주:석유 2천억 톤과 가스90억 입방 미터가 매장)의 79.34%을 루마니아가 소유하게 되고 우크라이나는 즈메이늬와 대륙봉 약20%를 차지하였다.
이와 같은 국제재판소의 결정에 우크라이나의 외상은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양국의 공동승리라고 하였으나 우크라이나 의회는 대륙봉를 상실한 즈메이의 소유는 무의미하다고 책임을 물어 외상의 해임을 가결하였다. 반면에 루마니아는 국제재판소의 판결은 정당한 것이라고 환영하였다.

즈메이늬의 역사와 소속

사실 즈메이늬는 흑해 연안국가의 오랜 역사적 해상 요충지로 기원전 부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해양 신이며 법과 정의의 여신 데미즈가 자신의 아들 아킬레스(주:트로이 전쟁의 영웅)를 위해 흑해에 암석을 솟아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스는 그곳을 레브께(백색지대)라고 호칭하고 아킬레스 기념 교회를 건축하고 항해자의 안전과 보호를 기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즈메이늬는 흑해의 전략적 해상요충지기 때문에 흑해의 강국이 늘 차지했었다. 오토만 제국 때는 그리스로부터 터키가 점유하고 있다가 다음에 1828-1829년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고 러시아가 점유하였다. 그리고 1843년에는 러시아가 최초로 등대를 설치하였다.
이때 즈메이늬를 히랍어로 피도니스라고 호칭하였는데(주:현대어로 뱀 섬이라는 뜻) 러시아도 오스뜨로프 즈메이늬(Остров змеиный=뱀 섬)로 호칭하였다. 루마니아 어로는 인술라 세르필, 그리고 터키어로는 일란-아다 라고 하였으나 다 같이 사도(巳島) 즉 뱀을 뜻하는 말로 뱀을 닮았다고 그렇게 호칭하였다고 한다.
그 후 즈메이늬는 1854-1856년 끄르임 전쟁에서 러시아가 터키에게 패하자 터키가 2년간 점유하고 있다가 루마니아에 양도하였다. 루마니아는 그때부터 85년간 소유하고 2차 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와 동맹국이 되면서 전략요충지 즈메이늬에 수비대를 상주시키고 있었으나 구 소련 흑해 함대 소속 상륙부대가 1944년 4월에 즈메이늬에 상륙해 루마니아 수비대를 항복시키고 소련 해군이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 후 1947년 파리 평화회담에서 즈메이늬는 스탈린이 루마니아에서 빼앗아 소련이 점유하고 있었다.
구 소련은 1956년부터는 방공 레이다 부대와 수비대를 주둔시켜 소련방
이 붕괴 될 때까지 까지 40년간 터키와 서유럽 국가는 물론 북대서양조약
기구(NATO)해군의 동태를 감시하는 기지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구 소련이
해체될 때 구 소련연맹 국가였던 우크라이나가 지리적인 이점으로 즈메이늬
를 상속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흑해의 강국이 되면은 의례 전략요충지인 즈메이늬의 점유권을 가
져갔다. 그러나 행정적으로 수년 전 까지만 해도 어느 국가의 영토에 편입되어 있지 않은 무적지로 남아 있었다.
         
              도서지위 확보와 대륙봉 분활

즈메이늬 주변에 있는 대륙봉 경계나 경제 전관수역 확정은 흑해의 공해상
에 위치한 즈메이늬를 암석(岩石)이 아닌 도서(島嶼)로서 인정하는 법적인 지위 문제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우크라이나는 즈메이늬가 자국의 영토 일부로서 당연히 영해소유권이 있
는 도서라고 주장하였으나 루마니아는 소련이 2차 대전 후 불법으로 탈취해
갔으며 단순한 암석을 인위적인 가공으로 도서지위를 얻으려는 것은 용인
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헤이그 국제 재판은 전후 파리 평화조약에도 불구하고 즈메이늬가 구 소련에 종속된 역사적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였으나 실효적 점령을 중요시해 도서로서 인정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국토와 연결된 해안선으로는 보지 않았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즈메이늬에 실효적 점유를 강화하고 국제 해양법상 도서요건을 갖추기 위해 2002년에 즈메이늬를 오데싸 주 낄리야 지방에 편입해 선착장과 방파제 시설을 하고 식목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경제 활동을 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가옥도 건축하여 약 30여명을 거주하게 했으며 그 중에 민간인은 10여명으로 수 마리의 돼지와 염소도 사육하고 있다..
공익시설로는 등대, 우편국 지소, 은행 지점, 통신 중계소,보건소, 매점 ,식당이 시설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2003년부터는 오뎃사 대학에서 학자들을 파견하고 상주시키고 있다. 그리고 서둘러 2007년에는 즈메이늬에 세워진 몇 개 가옥 등을 합쳐 최초로 그리스에서 호칭했던 레브께 (주: 우크라이나 어로는 벨로에=백색 지대)라는 거주지 지명으로 공식적인 행정조직을 하였다.또 앞으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여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호텔을 건축하고 정기 여객선도 취항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번 재판은 즈메이늬를 우크라이나의 도서로서 합법적으로 인정하였으나 우크라이나 해안선으로는 보지 않고 배타적 전관수역설정도 기각하면서 양국의 해안선 만을 기준으로 대륙봉을 분할해 즈메이늬에서 가까운 루마니아가 대륙봉의 80%를 차지하게 되였다.

              ***************************

 이번 판결에 EC 회원국과 몰다비아 등 이웃 국가들의 루마니아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불화로 힘이 약화되고 제정러시아 때 니꼴라이 2세가 처음 설립한 혜이그 국제재판소의 이번 판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철회해 대륙봉을 50%대 50%로 분할 할 기회를 놓쳤다고도 한다.
그 만큼 주변국가와의 도서관련 지지가 중요한데 우리는 독도 문제를 이르킨 장본인 인 일본 그리고 그 배후에 있던 미국에 독도 소유권 주장과 태도에는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면서 역사문제로만 해결의 열쇠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일본은 금년 국방 백서에 독도를 자국영토로 주장하고 있으며 또 곧 상하 양원은 독도를 자국영토에 포함하는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독도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미.일 편중외교에서 벗어나 북한,러시아, 중국 등 이웃국가는 물론 국제적으로 독도문제 해결에 협력을 얻어내는 노력을 강화 해야 되리라고 본다. 앞으로 여하한 경우에도 일본이나 미국에 프랜들리 외교가 결코 독도문제 해결과는 별개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즈메이늬 전도(全圖) 선착장과 가옥과 멀리 등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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