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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0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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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전략 요충지 즈메이늬(뱀섬)에 대한 국제재판소의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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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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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사학박사 박종효(모스크바대학교 객원교수) 교수님이 독도의병대에 보내온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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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스트로프 즈메이늬(뱀섬)에 대한 국제재판소의 판결로 본
우끄라이나와 루마니아의 도서분쟁의 실체
사학박사 박종효
흑해의 전략 요충지인 즈메이늬는 북위 45도 15분 동경 30도 12분의 공해상에 위치해 있다.
전체 면적은 25.5 헥타르의 암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길이는 615m, 폭은 560m다.
높이는 해발 10-41m로 자연식물은 자라지 못 하고 식수도 나지 않으며 여름에는 타는 듯한 햇빛과 겨울에는 폭풍우가 많다.
거리는 루마니아에서는 35km 떨어져 있고 우끄라이나 에서는 120km 떨어져 있다.
위와 같은 즈메이늬와 대륙봉의 소유를 두고 우끄라이나와 루마니아가 도서 분쟁을 수십 년간 계속해 오다가 루마니아가 2004년 9월 16일 UN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우끄라이나를 제소하면서 흑해 연안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었다.
국제재판소는 5년간의 심의를 거처 지난 2월 3일 도서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판결문에서 즈메이늬는 우끄라이나가 주장한 영토로서 인정하고 또 루마니아가 주장한 UN 해양법상 도서지위를 갖추지 못한 암석이므로 우끄라이나 해안으로 인정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인정하였다.
반면에 우끄라이나가 주장한 즈메이늬의 해안선이 곧 우끄라이나의 해안선이므로 대륙봉을 포함한 배타적 경제권을 부정하고 전통적인 중용의 관례에 따라 양국의 해상경계선을 확정하였다.
이 판결로 루마니아는 해안에서 즈메이늬 근접지역에 뻗쳐있는 대륙봉(주:석유 1억톤과 가스 90억 입방미터가 매장)의 79.34%을 소유하게 되고 우끄라이나는 즈메이늬의 합법적 소유권과 대륙봉의 약20%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국제재판소의 결정에 우끄라이나의 외상 그르즈꼬는 우꾸라이나와 루마니아 양국의 공동승리라고 하였으나 우그라이나 의회는 외상에 책임을 물어 그의 해임을 가결하였다. 한편 루마니아는 당연한 판결이라고 환영하였다.
사실 흑해의 즈메이늬에 대한 역사적 관계는 기원전 그리스 신화에 벌써 나와있다.
해양 신이며 법과 정의의 여신 데미즈가 자신의 아들 아킬레스(주:트로이 전쟁의 영웅)를 위해 흑해상에 암석을 솟아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오래 전에 즈메이늬에 레브께(흰 지대)라고 호칭한 곳에 아킬레스 기념교회를 건축하여 항해자의 안전과 보호를 기원했다고 한다.
한편 즈메이늬는 흑해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차례 흑해의 강국으로 등장한 국가에 점유 당했었다.
오토만 제국 때는 그리스에서 터키에 소속되었다가 1828-1829년 러시아- 터키 전쟁에서는 러시아가 승리하자 러시아가 점령하고 1843년에는 등대를 설치하였다.
이때 즈메이늬를 고대 그리스어로 피도니스라고 호칭하였다(주:현대어로 뱀 섬이라는 뜻) 이후부터 러시아어로도 오스트로브 즈메이늬(Остров Змеиный=뱀섬)로 불렀다.
따라서 루마니아가 점유하고 있을 때도 인술라 세르필, 그리고 터키가 점유 하고 있을 때는 일란-아다 라고 호칭하였으나 언어만 다를 뿐이지 다 같이 뱀섬이라는 뜻이었다.
그 후 즈메이늬는 1854-1856년 끄르임 전쟁에서 러시아가 터키에게 패하자 터키가 1859년까지 점유하고 있다가 바로 루마니아에 양도하였다.
그 후부터 루마니아는 85년간 소유하고 있었으나 2차 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에 가담하자 구 소련흑해 함대 소속 상륙부대가 1944년 4월에 즈메이늬에 상륙해 루마니아 수비대를 항복시키고 소련 해군이 점령하였다. 그리고 1948년 파리 평화회담에서 즈메이늬는 흑해의 전략 요충지라 스탈린이 루마니아에서 빼앗아 소련이 점령하게 되었다.
이렇게 즈메이늬는 흑해의 강국이 되면 의례 즈메이늬를 점유하였으나 한번도 어느 나라 영토에도 편입되지는 않았었다.
그 원인은 사람이 살수 있는 도서로서 조건을 갖추지 못해 다만 전쟁시기에 흑해의 전력적 요충지 역할만 했기 때문이었다.
소련은 1956년부터는 방공 레이다 부대와 수비대를 주둔시켜 1991년까지 40년간 터키와 서유럽 국가는 물론 NATO해군의 동태를 감시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구 소련이 붕괴될 때 우끄라이나가 즈메이늬를 상속받았다.
그런데 1980년대 루마니에서 즈메이늬 주변에 뻗어있는 대륙봉에 엄청난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밝혀지면서 루마니아는 우끄라이나에 스탈린이 강제로 즈메이늬를 약탈해갔으며 또 UN 해양법 제 3조에 의거 즈메이늬는 암초이므로 섬으로 불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 하였다.
이런 루마니아의 주장에 우끄라이나는 즈메이늬에 도서로서 법적인 지위를 갖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긴장을 완화하려고 군부대를 철수시키고 대신 2002년에 즈메이늬를 오데싸 주 낄리야 지방에 편입해 접안부두와 방파제 시설을 하는 한편 식목도 하기 시작하였다.
또 그곳에 경제 활동을 하면서 생활 할 수 있는 가옥도 건축하여 지금은 약 6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에 민간인은 10여명으로 수 마리의 돼지와 염소도 기르고 있다.
공공시설로는 우편국, 은행 지점, 통신 중계소,보건소, 매점 등을 형식적으로 갖추고 있다.
앞으로 하기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호텔을 건축하고 정기여객선도 취항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루마니아는 즈메이늬에 인공시설은 인정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우끄라이나는 2007년에는 즈메이늬에 세워진 몇 개 가옥 등을 합쳐 최초 그리스에서 호칭한 레브께(벨로에)(주:우끄라이나어로는 벨로에=흰 지점)라는 부락 명을 정하고 공식적으로 우끄라이나의 행정조직에 포함시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번에 우끄라이나는 즈메이늬를 영토로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아 소유하게 되었으나 해안선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루마니아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된 대륙봉의 80%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런 판결에 앞서 특히 EC 회원국과 이웃 국가들이 루마니아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제정러시아 때 니꼴라이 2세가 설립한 헤이그 국제재판소의 이번 판결에 러시아와 우끄라이나의 관계가 악화되어 러시아가 우끄라이나에 지지를 철회해 대륙봉을 50%대 50%로 분할 할 기회를 놓쳤다고도 한다.
한편 지난 미국 대통령 후보자였던 멕케인의 외교참모 잭슨은 즈메이늬는 루마니아에도 우꾸라이나에도 소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분홍색: 우끄라이나, 회색: 루마니아,즈메이늬( O ) 즈메이늬 섬 전도
독도의 해결책
독도도 만일의 경유 국제재판소로 끌고 갈 경우를 대비를 해야 한다.
아직 미비한 거주 요건을 갖추고 주변에 어장설치와 식목도 불가피하다.
유감스런 것은 정부에서 독도문제 해결에 아직도 미국에 많이 기대하는 경향이 있으나 독도 문제의 발단이 미국으로 하여금 생겼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입장에서 보면 일본측 주장을 옹호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대응책과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독도에 관한 한 북한, 러시아,중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들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일에는 등한히 하고 있어 못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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