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대학과 FTA
1. 교육으로 FTA 난관극복
FTA의 거대한 홍수는 막을 길이 없고, 날이 갈수록 고령화하는 농촌 인구는 5.4%로 떨어져서 대책이 없고, 비료농자재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고, 쌀값, 농산물 가격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대한민국 농업인들은 한숨 쉬며 아우성치고 있지만 이 일은 결코 한숨 쉬고 아우성 칠 일만은 아니다.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시절!
오랜 역사와 함께 대물림해 내려온 가난!
우리는 초근목피 보릿고개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허덕이면서도, 일본에 식량공출당하고 식민지 서러움까지 겪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산 앞들의 풍성한 농산물마저 해마다 홍수에 범람한 낙동강이 다 쓸어가 버려 구미면민들은 절규했다.
하지만 구미면민들은 다시 일어나 새마을운동을 시작해서 강둑을 쌓아 곡창지대를 만들고, 길을 넓혀 공장을 만들고, 물류이동이 원활한 항구도시가 아닌 내륙이었지만 수출의 선두도시로 만들어, 세계인이 견학 오는 구미시로 만들었다.
대물림 해온 보릿고개 가난이 세계 8위 수출국의 동기부여가 되었듯이 FTA는 걱정할 것이 아니라 넓어진 내 장터를 만드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한 대가 과거에 젊은이 수 십 명이 소로 논 밭 갈고, 인분으로 거름 만들고, 지게로 운반하고, 손으로 모심기하고, 낫으로 베던 일을 하고 있지 않는가?
기계를 다루는 노인 한 명이 젊은이 수 십 명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농업현장이다.
그 노인이 농업대학을 수료한 노인이라면 더 금상첨화인 것을 이번에 농업대학을 수료하면서 깨달았다.
수많은 농토로 공장부지와 도로를 만들어 공업과 상업의 발달을 이뤄낸 구미시가 이제 농업대학을 통하여 농, 공, 상업의 동반성장에도 앞장섬으로써 세계 속의 모범도시로 발돋움한 것에 대해 대단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2. 구미농업대학 수료식
2013년 12월 10일!
구미농업기술센터에서 구미농업대학 수료식이 있었다.
도시의 50-60대들은 정년퇴직으로 희망을 잃어가는 시기에 접어든 반면, 농촌의 50-60대들은 발전 가능성이 없는 농촌 생활에 쫓겨 정년퇴직 없는 평생직장을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 왔던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농업대학 교육을 받으므로 인해 대한민국의 농업현실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게 되었고, 관행위주의 농업이 아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영농방법을 습득함으로써, 작지만 강한 평생직장, 농업 CEO의 확실한 자긍심과 꿈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틈틈이 농사를 짓는 우리 같은 경우, 모를 심어 놓고 바빠서 미처 잡지 못한 잡초 때문에 한 해 벼농사를 망칠 뻔 했는데, 구미농업대학에 강사로 오신 임일빈 교수님이 잡초 잡는 방법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셔서 그대로 시행한 결과 기적적으로 예년과 같은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인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한 좋은 사례였다.
고혈압등 성인병에 대한 대처방안을 강의해서 학생들의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오상구 교수님은 수료식 당일에도 오셔서 소주 1병을 먹을 경우 간이 해독하는데 3일 걸리고, 안주로 고기를 같이 먹은 경우 미처 해독하지 못하고 간에 축적되는데 이것이 지방간을 만들면서, 나중에 간경화로 발전한다고 가르쳐 주시면서 수료생들에게 꼭 필요한 건강교육을 해주셨다.
3. 귀농인은 대한민국 농촌의 구원투수
농사라고는 시골학교 근무할 때 학생들과 실습지에 고구마 심어서 손가락만한 고구마 수확해 본 것이 전부인 내가,
“상인은 상대방의 주머니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인지 생각하지만 농업인은 본인이 땀 흘리고 수고한 만큼의 결실만을 기다리는 순수한 사람이다. 나는 언젠가는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다.”
하면서 언젠가는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던 4H 출신 남편을 따라 겁도 없이 들어선 농촌!
20여 년 간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해서 논을 만들었는데, 2012년도 가을에는 수확적기를 놓쳐서, 쌀 백 섬 나오던 논에서 나락을 새들에게 다 빼앗기고 일곱 섬 수확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2013년도에 농업대학에 입학해서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았다.
70대의 나이에도 5만평을 경작하는 수료생이 과거에는 잘나가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부러웠는데 그 친구들이 지금은 다 정년퇴임해서 할 일이 없다 보니 정년퇴임 없이 계속 활동하는 자신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 수료생들은 공감했다.
이번에 구미농업대학 수료생 중에는 월 400만원 연금을 받는 수료생, 공무원 퇴직하고 입학한 수료생, 이제 농촌에서 첫걸음을 시작한 신혼부부 수료생 등, 다양한 귀농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농업대학 공부를 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 것에 대해 감사했고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과거 70%이상이었던 농업인이 고령화되어 5.4% 밖에 되지 않는 요즈음, 귀농인들은 대한민국 농촌의 구원투수라고 볼 수 있다.
귀농인들이 교육을 통해 생명산업의 가치를 알고, 이들이 농촌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귀농인들의 후손은 결코 불확실한 도시로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귀농하여 성공한 부모를 거울삼고 자란 자녀들은, 고령화된 농촌에서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대한민국 농촌의 기둥으로 성장할 것이다.
4. 농업 공무원들의 희생과 봉사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수료식에 참가한 여러분들을 축하합니다.
구미농업대학에서 전문 과정을 배운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여러분들도 대학과정을 수료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FTA문제로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문적인 농업 교육을 받고, 재무장된 여러분들에게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농업대학을 통해 배우고 익힌 우수한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보다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하여 세계시장을 향해 나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무사히 수료식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이 업무를 진행해온 사람으로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농업기술센터는 여러분들이 농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농업기술센터의 문은 여러분에게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세상으로 내보내듯, 1년 동안 정성으로 키운 노 제자들의 성공의 진심으로 바라면서 김영조 학장님과 정인숙 계장님이 들려준 격려사의 의미를 우리는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모든 학생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보내주고 시작부터 수료식까지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학생들의 손발이 되어 뛰어준 김은경선생님과 김천일선생님의 적극적인 봉사를 떠난다고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수료생을 대표해서 농업인으로서 최초로 철탑산업훈장을 받고 대통령표창을 받은 정태근회장님이, 요즘도 과제장을 쓰고 있다면서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으면 우리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수료소감을 발표했다.
이처럼 효과적인 농업정책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을 위시한 농업관련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공하는 농업인들이 많아지고 귀농인의 자녀들이 자리 잡는 것을 보면 수많은 젊은이들은 농촌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대한민국 농업은 네델란드를 넘고 FTA를 넘어서 세계 속의 생명산업 농업으로 우뚝 설 것이고, 그것이 바로 독도를 지켜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