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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12 15:00
제 2회 울릉, 독도 경비대원 위문행사 개최후기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11,940  

제 2회 울릉, 독도 경비대원 위문행사 개최후기

1. 2년 만에 이루어진 소원

독도의병대는 2013년 7월 1일~3일까지 울릉, 독도경비대원들에게 소고기 불고기를 대접하는 행사를 가졌다.

2011년 10월에 독도경비대원들과 울릉경비대원들에게 짜장면 탕수육을 대접하고 돌아오는 배안에서 배가 멀리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드는 독도경비대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언제 또 다시 저 젊은이들을 찾아갈 수 있을까? 꼭 다시 와야 하는데......'

생각은 하면서도 언제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확실하게 약속할 수 없어 다시 오겠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그런데 그 소원이 2년 만에 이뤄졌다.

이번 행사에는 특별히 해외교포자녀 대학생에게 독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해외에서 독도홍보대사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기위해 대학생 10명을 초청하여 같이 갔다.

일반인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바쁜 사람들이라 2박 3일이라는 시간내기가 쉽지 않는데도 구미기독교연합회 목사님들, 남구미 로타리클럽 회원들, 독도단체 대표들이 뜻을 같이 하여 참여했다.

2011년도 울릉 독도 경비대원 짜장면 탕수육 대접하는 행사에 참가했던 남구미로타리클럽 회원들은 독도장터 대표 윤종욱 사장님을 중심으로 이번에도 또 참가해서 1회성의 독도사랑이 아닌 지속적인 독도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다른 봉사단체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2. 머나먼 포항 선착장

서울에서 맛있는 소고기를 특별히 주문하고 울릉, 독도경비대원들에게 선물할 수박과 과일, 부식 재료를 동부교회 정희수 목사님과 김재호 목사님 승합차에 두 차 가득 싣고, 급하게 포항으로 가던 중, 정희수 목사님 차가 접촉사고가 났다.

신호대기를 기다리다 초록불로 바뀌는 것을 보고 급한 마음에 빨리 출발했는데, 앞 차의 출발이 늦은 바람에 접촉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차가 달리는 도로에 사고차를 그대로 두고 보험회사와 지인에게 계속 연락만 하고 있는 상대방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가슴이 탔다.

포항 선착장에 먼저 왔다고 전화 온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가 늦게 되니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선플라워호에는 차가 사람보다 먼저 들어가야 하는데 한없이 시간을 끌고 있는 앞차 주인을 기다리다 못해 선플라워호 출항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 우리의 형편을 말하고 빨리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독도일로 빨리 가야 한다는 말에 그때서야 상대방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우리를 보내주어서 다행히 차는 출항 직전에 포항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먼저 도착한 김재호 목사님 승합차는 배에 실었지만, 정희수 목사님 차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배에 실을 수 없다면서 끝내 실어 주지 않아, 차에 싣고 바로 울릉도로 들어가기로 했던 수박과 부식은 참가자들의 손을 빌려 일일이 배에 실어다 날라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3. 박춘환 최초의 독도경비대장님의 후배사랑

포항선착장에 도착해보니 누구보다 우리를 반기는 분이 계셨다.

박춘환 최초의 독도경비대장님이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시기 위해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로서는 가장 먼저 독도에 주둔하신 박춘환 최초의 독도경비대장님!

울릉경찰서에서 근무할 당시 독도근무를 20번 이상하셨다는 박춘환 대장님은 독도의 산 증인이시다.

독도의병대와 만난 자리에서 본인은 경찰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고 민간인인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독도를 지킨다고 수고했으니 이들이 예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독도의병대가 경찰로서 근무할 당시 월급을 얼마 받으셨는지 물어 보았더니 초기에 600원 받으셨다고 하셨다.

600원 이면 그 당시 쌀 4되 값이다.

가족들 생활비도 안 되는 그 돈으로 독도의용수비대원들보다 더 오랜 시간 열악한 독도에서 생활했지만, 본인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다는 말씀에 가슴이 미어왔다.

쌀 4되 값밖에 안 되는 월급 600원 받은 것 때문에 예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독도의병대에서 1950년대에 독도를 경비했던 독도경비대원들도 예우하자는 건의를 국회에 하게 되었다.

행사 참가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격려 인사를 하시고 헤어질 때, 박춘환대장님은 우리가 안겨드린 수박을 들고 갈 수가 없다면서 끝내 사양하셨다

수박하나도 들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지신 몸이었지만 울릉도, 독도, 후배경비대원들에게 소고기 불고기 대접하는 일이 마치 당신이 대접 받는 것처럼 생각하셔서 포항선착장까지 찾아오셔서 격려하시고 돌아서시는 박춘환 최초의 독도경비대장님!

돌아가시는 그 분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다들 연로하셔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이 독도경비대어르신들 예우하는 법을 만드는 일에 후손인 우리가 더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 꼬두밥과 소고기불고기에 담긴 독도사랑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한 팀은 독도박물관으로 가고, 한 팀은 울릉경비대로 가서 식사준비를 시작했다.

독도박물관을 다녀온 팀은 식사 준비가 될 때까지 울릉경비대 강당에서 울릉경비대장님이 준비한 독도관련 자료를 보면서 장일영 울릉경비대장님의 열띤 독도강의를 들었다.

독도사진과 자료를 일일이 보여주면서 성의를 다해 열강하시는 대장님의 모습에서 독도를 지키는 대원들을 인솔하고 있는 울릉경비대장님의 투철한 독도사랑과 독도수호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독도 방문을 하기 전에 선수 학습을 확실하게 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한 팀은 경비대원들에게 좀 더 맛있는 밥을 대접하려고 울릉도 가기 직전 직접 정미소에서 찧은 찹쌀로 밥을 지었다.

많은 쌀에 찹쌀이라고 물을 적게 넣고 밥을 했더니 이건 찰밥이 아니라 아예 생꼬두밥이 되어 버렸다.

그 밥은 차마 내놓을 수 없어서 새로 밥을 짓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겨우 밥을 다 만들고, 버섯 소고기불고기까지 만든 다음, 울릉경비대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더니 커다란 국솥에 한 솥 가득 만들었던 소고기 불고기가 제일 뒤에 드시는 울릉경비대장님은 드실 것이 없을 정도로 불티가 났다.

맛이 없어 남으면 어떡하나 생각했는데 맛있게 먹는 모습들을 보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그동안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땀 흘리며 동분서주 하던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식사 후에는 경비대원과 참가자들이 모두 강당에 모여 율우리가락연구원생들의 뱃노래, 고전무용, 해외교포대학생들의 홀로아리랑 등, 이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무용과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5. 풍랑에 묶인 발

셋째 날은 독도에 가서 독도경비대원들을 대접하고 바로 포항으로 나오기로 했기 때문에 둘째 날 여가를 틈타 울릉도를 일주 했다.

한참 공사 중인 안용복 기념관을 방문하여 더운 날씨에 공사하느라고 수고하는 분들에게 수박 한 덩어리 선물하고 돌아오니 훨씬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저녁때부터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점점 더 심해져서 셋째 날에는 독도는 고사하고 포항에서 들어오는 선플라워호 조차 올 수 없다고 하는 것 아닌가?

스무 번 정도 독도를 방문했지만 풍랑 때문에 울릉도에서 포항으로 나오지 못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울릉도 독도에 여행 왔다가 파도로 발이 묶여 어려움 당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은 겉으로는 동감하는 척 했지만 남의 일처럼 들었는데 정작 우리가 발이 묶이게 되니 황당했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전혀 예상치 않고 빠듯하게 행사비 지출을 하다 보니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파도가 잠잠 해질 때까지 50여명의 숙식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울릉군에서 20만인 방문했다고 기념식 하는 것 보고, 최소한 100만인은 울릉도를 방문해야 울릉도 경제가 활성화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독도의병대는 2007년도에 국회에서 최저 울릉도 독도 100만인 방문하기 발대식을 개최하고 해외여행보다 울릉도, 독도 여행을 많이 가야 한다는 홍보를 언론까지 동원해서 대대적으로 한 바 있다.

울릉도 독도를 방문하지 못하도록 막는 풍랑으로 인한 지체 부분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시정해야 한다고 말은 많이 했는데 정작 우리가 그 당사자가 되니 어디서,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먼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로타리클럽 회원들에게 독도의병대가 식비는 책임질 테니 추가되는 숙박비는 본인들이 부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동의를 받고 돌아서는 순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참가한 로타리클럽회원들은 대부분 1회 행사에도 참가한 분들이어서 없는 시간 쪼개어 두 번이나 참가한 것도 고마운 일인데 이 분들에게, 추가되는 숙박비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도저히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의병대가 이 행사로 인해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추가된 숙식비는 받지 않아야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6. 나누면 반이 되는 슬픔

은행 온라인 서비스가 시행되지 않던 시절, 울릉도에 여행 온 사람들이 파도로 길이 막혔을 때 돈이 떨어져 내놓은 금반지를 울릉도 사람들이 제대로 값을 쳐주지 않고 돈으로 바꿔줌으로써, 여행자들의 원성을 사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시세보다 싸게 산 금반지를 들고 기뻐하는 울릉도 주민을 지켜본 여행자는 울릉도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육지에 돌아가서는 만나는 지인들마다 울릉도 여행은 절대로 가지 말라고 만류하지는 않았을까?'

'울릉도 주민이 3만 명 이상이었던 것이 지금 1만 명도 되지 않는 것은 어획량 감소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울릉도, 독도를 찾는 여행자들이 많지 않은 것도 한 몫을 하지 않았겠나?'

'해운대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면 울릉도인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에 정착할 수 있지 않았겠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베푸는 친절한 서비스도 감동을 주겠지만, 천재지변으로 인해 갇히게 된 여행객들에게 울릉도 주민들이 최대한 서비스를 해준다면, 이 서비스에 감동한 여행객들은 영원한 울릉도 독도 홍보대사가 될 것이고, 그들은 더 많은 지인들에게 울릉도 독도 여행을 권할 것이다.

'공항에서 돈을 받듯이, 울릉도, 독도여행객들은 들어오면서 일정액을 적립하여, 이들이 풍랑을 맞아 나가지 못할 때는 숙식비를 반값으로 제공받고, 여행자들에게 염가로 편리를 제공한 울릉도 상인들에게는 적립금 일부를 지불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어떨까?'

'울릉도인들 가운데도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런 일의 취지를 이해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풍랑을 걱정해서 울릉도 독도 단체방문을 실행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수학여행단들이 울릉도, 독도로 대거 몰려오지 않겠는가?'

이번 행사를 통에서 풍랑에 갇힌 여행자들을 배려하는 정책 개발을 하루 바삐 본격적으로 시행해야한다는 숙제를 안고 돌아왔다.

6. 풍랑에 갇힌 자의 여유

풍랑으로 독도경비대 방문이 불가능해지자 낙심하고 있는 것 보다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성인봉 등산을 하자는 말이 나왔다.

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 수상자들과 울릉도를 수차례 방문하고, 독도탐방행사로 여러 번 울릉도를 방문했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단 한 번도 성인봉 등산을 하지 못했던 나는, 이번에는 작심하고 성인봉을 올라가 보리라 마음먹고 같이 출발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중간에 몇 번이고 돌아서고 싶었지만 이번에 오르지 못하면 영원히 오르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지팡이를 짚고 무리를 하면서 올라갔더니, 산 중간쯤에 무릎 수술을 했다는 아주머니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한 채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 보다 더 힘든 상황인 나 같은 사람도(왜냐하면 아주머니보다 내 몸무게가 더 나가니까) 올라가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독려했다.

한 참 망설이던 아주머니는 결국 나를 따라 나섰고 우리는 끝도 없이 먼 길을 계속 올라갔다.

중도에 주저앉은 아주머니를 두고 먼저 성인봉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던 아주머니 친구는 힘들게 올라가는 친구를 다시 만나자 반가워 어쩔 줄 모르면서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 성인봉까지 같이 올라갔다.

주변사람들의 격려와 지팡이에 힘입어서 아주머니와 나는 기적처럼 성인봉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성인봉정상의 바위를 끌어안으니 눈물이 나왔다.

이번 성인봉 등산을 통해서 힘든 순간에 함께 해주는 격려가 얼마나 많은 엔돌핀을 생산해 내는지 알 수 있었다.

땀 흘리며 산을 오르내리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군침을 흘리게 했던 오윤길 부대장님의 커다란 수박을 성인봉 정상에서 나누어 먹는 즐거움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나는 이번 성인봉 산행을 통해서 지팡이를 의지하는 노인들의 심정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94세 되신 시어머니께 드릴 향나무 지팡이를 거금 3만원을 들여 샀다.

7. 사고 속에 꽃 핀 독도사랑

성인봉 등산을 끝내고 혼자 먼저 내려오시던 정연수사장님이-(주)한국 파이프 대표-거의 다 내려와서 넘어져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세가 있으시고 성인봉을 다녀오신 경험도 있으셔서 6명이 한 조가 되어 출발하는 2팀을 이끄는 팀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워낙 활발하시다 보니 남보다 빨리 올라갔다 먼저 내려오시면서 사고를 당하셨다.

젊은 팀원들보다 더 빠르게 혼자 산을 내려오시는 도중에 일어난 사고라, 사고가 났어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서 넘어진 상태로 그대로 한참동안 계시다, 마침 지나가던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119에 신고해 주는 바람에 병원으로 이송 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산하는 도중에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도 빨리 내려오지 못하고 많이 다쳤을까봐 걱정만 했는데, 하산해서 바로 병원에 갔더니 뼈는 이상이 없고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고 하시면서 목에 기브스를 하고 누워 계셨다.

"날씨 때문에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 되지 못하고 지체되어서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으실 텐데 나까지 걱정을 끼쳐서 미안합니다. "

"아닙니다. 많이 다치셨을까봐 걱정했는데 뼈에는 이상이 없다니 천만다행입니다. "

평생을 교직에서 2세를 교육하시다 퇴직하신 후 모처럼 시간 내어 남편과 함께 이 행사에 참여하신 사모님도 입원한 남편 곁에서 간호하느라 힘든 가운데서도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셨다.

사고를 당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시니 우리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이 포항으로 나올 때 정연수사장님은 대구 동산병원으로 이송 되셨다.

그 후 두 내외분은 독도의병대에게 부족한 행사비에 보태 쓰라고 찬조금 50만원까지 보내 주셨다.

고통 속에서 보내주신 찬조금 50만원은 그 어떤 돈보다도 귀한 돈이었고 독도의병대는 그 돈을 이번 행사하면서 빌린 돈을 갚는데 사용했다.

8. 독도참치 옥계점 손태봉 사장님의 독도교육

독도의병대는 2001년 4개월만에 독도지키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달성하고 8월 15일 국회의원들과 독도에서 광복절 행사를 마친 후 돌아오는 선플라워호 배안에서 독도에 수학여행 온 일본인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풍랑과 경비를 이유로 독도 수학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기에 일본 학생들이 독도까지 수학여행 온 것을 보고 우리는 전율을 느꼈다.

'수학여행까지 시켜가면서 독도를 철저하게 교육하는 일본으로부터 과연 우리는 독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 충격을 받은 이후 독도의병대는 독도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 국민을 상대로 전국 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를 개최했다.

수 천 명의 참가자 가운데 최우수의병상 수상자 70여명을 선발하여 직접 독도탐방을 시키면서 독도를 실물로 교육하고자 했으나, 30년 지상권 있는 독도의병대 사무실을 땅주인이 10년 만에 철거하겠다고 법적인 소송을 거는 바람에, 사무실 주소가 확정되지 않아 이 대회는 7회까지 개최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이런 아픈 상처가 있는 독도의병대로서는, 어린이가 참가하여 어른들과 똑같이 거뜬하게 모든 일을 소화해 내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독도참치 옥계점 손태봉사장님은 이번 2회 행사에는 8세인 동생을 데리고 또 오셨다.

더구나 며칠 전에는 독도의병대가 2박 3일 동안 집중적인 독도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하동 청소년수련관에서 개최하는 제 3기 대한민국 독도학당에도 자녀들을 참여시키겠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다들 독도를 교육해야한다고 말로는 잘하지만 막상 내 자녀를 학교 결석까지 시켜가면서 독도행사에 참여시키기는 여간 어려운 결단이 아닌데도 손 사장님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자녀를 데리고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에는 경남에 있는 친구와 친구의 자녀까지 참여시킴으로써 독도사랑을 실천하는 대한민국 학부모의 열정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들이 손사장님의 마음으로 자녀에게 독도교육을 시킨다면 우리 독도는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9. 독도의용수비대원의 배웅

6.25당시 정부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울릉도 청년 홍순칠 대장을 중심으로 울릉도 청년들이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서 독도를 지키는데 큰 일익을 담당했다.

이번 행사 중, 둘째 날 저녁 시간에 그 당시 활약했던 독도의용수비대원, 독도경비대원을 초청해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분들의 생생한 증언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다시금 독도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다음날 일행들을 먼저 포항으로 보낸 후 나는, 울릉도에 남아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을 찾아뵙고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식사를 마치신 어른들이 먼저 식당을 나가신 후, 뒤에 계산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어른 두 분이 도로 양쪽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떠나가는 나를 배웅하기위해 서 계신다는 생각이 들자 오른쪽 택시 창문을 열고 외쳤다.

"이 필영 어른! 안녕히 계십시오!"

나의 고함소리를 들은 이 필영 어른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정면을 주시하고 계셨다.

택시가 이필영 어른 곁을 지나면서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 이필영 어른!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고함을 쳤을 때 이필영 어른은 더 정면을 똑바로 주시하셨다.

택시가 빨리 지나치는 바람에 우리는 눈이 서로 마주쳐 보지도 못하고 내가 탄 택시는 지나가 버렸다.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택시기사는

"저 어른은 우리 회원이신데 눈 수술을 하셨지만 옆으로는 못 보시고 정면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조금!"

기름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5톤이 안 되는 배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을 독도에 태워 주고 부식을 날라주어서 홍대장이 늘 미안하게 여겼다던 이필영 삼사호 선주님!

그 어른이 잘 볼 수도 없는 눈으로 도로변에 서서 배웅하시는 모습 속에서 나는 간절히 부탁하는 음성을 들었다.

"우리의 젊음을 바쳐 지킨 독도! 이제 여러분들이 잘 지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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