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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08 15:26
축사 - 여러분은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 수당기념관장 이문원(전독립기념관장)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4,865  

축사 - 여러분은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수당기념관장(전 독립기념관장) 이 문원

 

저의 증조할아버지이신 수당 이남규 어른은 일제가 저지른 명성황후 시해 사건 때 이를 규탄하는 "청절왜소", 을사늑약 때는 "청토적소" 등의 상소문을 써서 일제의 만행을 온 나라에 알려 애국심을 고취시킨 분입니다.

 

구한말 홍주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혐의로 일본 헌병에 압송 당하던 중 일제가 회유하자 “죽으면 죽을 것이지 내가 굽힐 것 같으냐” “선비는 죽일 수 있으되 욕보일 수는 없다(士可殺不可辱)”라고 호통치며 연행하려는 일본 헌병을 엄히 꾸짖다가 화가 난 일본 헌병에게 이 남규 증조할아버지 뿐만아니라 동행한 아들 이 충구(忠求)할아버지와 가마꾼 김응길, 가수복씨도 함께 참변당해서 끝내 순국하셨습니다.

1955년 7월 1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이를 두고

“수당은 충(忠)에 죽고, 그의 아들은 효(孝)에 죽고, 그의 종은 의(義)에 죽었다.”

라는 글로 기리기도 했습니다.

이승복아버지는 13세의 어린나이에 가장이 되어 가족을 돌보시다가 중국으로 가셔서 이동녕선생님을 모시고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상상도 못할 감시와 어려움을 당하면서 저도 한 때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성장한 후에는 선친들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가 있음을 깨닫고,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정신을 후세에 가르치는 일만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당기념관을 만들고 해마다 학생들을 초청해서 애국심을 함양하는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내가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재직할 때 장렬하게 순국하신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애국선열들의 문중은 어찌 되었는지, 후손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분들의 가정에서 애국인사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흔히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국력에 달려있다고 말하지만 국력은 국민의 국가관에 의해 좌우됩니다.

다시 침략하는 일본인들 앞에서 우리가 확고한 의지로 독도를 지켜내지 못하면 분명히 우리는 대한민국 성문을 또 열어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오늘 독도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을 보면서 저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종황제 독도칙령 제정 112주년 기념 제 7회 한민족 독도사랑발표회 행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하시는 모든 일이 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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