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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22 07:49
세 켤레 구두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7,879  

세 컬레 구두

 

다솜이가 타고 있던 중국행 비행기는 멀리 멀리 날아갔다.

다솜이가 사주고 간 구두를 바라보면서 나는 떠나간 다솜이를 생각했다.

 

“독도차 가지고 우리 학교 근처에도 오지 마세요!”

독도를 교육하고 문화로 심기위해 2001년도부터 시작한 전국독도사랑작품공모대회에서 입상한 우수 작품을 코팅해서 승합차에 붙이고 다니는 부모에게 다솜이는 학교 근처에는 아예 독도차를 가지고 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다솜이가 철이 없어 그런 줄 알고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성적이 계속 떨어져도 부모가 독도지키기 서명운동을 하기 위해 월요일이면 나가서 토요일 저녁에야 들어오는 생활을 하면서 긴축생활을 하다 보니, 다니던 학원을 중단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할 때 전교 1등 했던 다솜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영어성적이 28점이라는 통지표를 받고 보니 기가 막혔다.

그것도 담임선생님이 영어선생님인데......

다솜이의 방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독도지키기 운동을 시작한 이후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28점 성적표를 받았을 때처럼 난감했던 적은 없었다.

 

엄마가 한때 교직에 있었는데 그 엄마의 아들 다솜이가 28점 성적표를 받다니......

자식 농사가 평생농사라는데......

통곡하며 기도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저 방황하는 다솜이를 위해서 더 열심히 독도지키기 운동을 하자!’

 

한때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장학사님과 의논 끝에 중학교는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기로 했다.

학교에 자퇴서를 내러 갔더니 교장선생님은 우리를 만나자마자 대뜸

“종교에 미쳐서 자식을 버리는 것은 보아도 독도에 미쳐서 자식을 버리는 것은 처음 봅니다.”

하면서 왜 그렇게 독도에 미쳐서 자식을 버리느냐고 우리를 힐문했다.

 

우리는 교장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중학교선생님들의 독도관이 짐작이 갔고, 그동안 다솜이가 학교에서 놀림감이 되어 받은 스트레스는 그대로 내 마음에도 전이 되어 왔다.

 

우리는 다솜이가 독도차를 학교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 이유를 중학교 다닐 때는 모르고 있다가 중학교를 떠나오면서 그때서야 깨달은 못난 부모라는 사실 앞에서 가슴이 저려왔다.

다솜이는 새로운 각오로 고입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2003년 7월 10일 밤 10시 20분경!

검정고시 공부를 마치고 자전거 타고 귀가하는 도중 다솜이는 LG 필립스 LCD 부사장인 박기선씨 승용차 앞 조수석에 치여 길거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경찰은 사고당한 다솜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박기선씨쪽 사람의 말만 듣고 승용차 앞 조수석문에 자전거의 파란색 페인트 자국이 묻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가는 박기선씨 차를 다솜이가 접근해서 승용차 뒤 범퍼를 들이받은 것으로 초동수사를 끝냈다.

 

증인들의 말을 듣고 독도의병대가 요청해서 재조사까지 했지만 잘못된 초동수사는 끝내 수정되지 않았고 구미차병원에 입원한 다솜이는 거짓말 하는 어른들에게서 다시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다솜이는 이 사고에 연연해하지 않고, 입원 중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평균 98점으로 검정고시에 거뜬하게 합격하고, 그 당시 전교에서 2%안에 들어가야 입학할 수 있었던 거창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독도지키기 서명운동 하러 다니느라 중학교 때 삔 발을 빨리 치료해 주지 못해 조금만 운동해도 발이 붓게 되자, 거창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수술비를 모아주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했지만 발목은 끝내 회복되지 못했고, 수술한 의사로부터 평생 운동을 하지 말라는 선고를 받아야 했던 다솜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지 못해도, 다솜이는 공부에 집중해서 한동대학교에 합격했다.

 

해양수산부에서 1000만원 지원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고생시키는 다솜이에게 미안해서, 차마 바로 거절하지 못하고 이 사실을 다솜이에게 말했을 때, 다솜이는 지금까지 지켜온 의병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힘들어도 그 돈을 받지 말자고 했다.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는 담임선생님의 문자를 계속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의병정신을 잃지 않도록 정부의 돈을 받지 말자는 다솜이의 말은 부모인 우리에게 그 어떤 지원군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겨울방학 때 다솜이는 학생들을 가르쳐서 받은 돈으로 밀린 등록금을 내더니, 할머니 용돈까지 드리고, 한동대학교에 등록한 후, 한동대 기숙사에 있으면서 낮에는 공부하고, 총학생회 일 보고, 저녁에는 포항에 있는 학원에 가서 아이들 가르치고, 새벽 2시에야 돌아오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추석에도 집에 오지 못하다가 비쩍 마른 모습으로 모처럼 집에 다니러 온 바로 그 날!

 

독도사랑전시관을 지을 수 있도록 땅을 빌려 주고, 30년 지상권 설정을 해주었던 땅 주인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찾아와서 이사 나가라고 행패 부리는 광경을 다솜이가 보게 되었다.

 

행패부리는 땅주인을 말리다 죽인다는 말을 들은 다솜이는 충격 받아 그때부터 공부는 그만두고 돈을 벌겠다고 했다.

 

다솜이가 이 결심을 하게 된 원인을 알고 있는 우리는 다솜이의 이 결심을 막을 수가 없었다.

 

대구 망우공원 광복회 조양회관에서 800여명의 수상자와 가족들이 시상식하루 전부터 모여 독도캠프를 할 때, 한동대학교 총학생회 임원들과 다솜이는, 구운 김을 박스로 구입해와 수상자와 가족들에게 대접하면서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그때 같이 봉사했던 한동대 총학생회장이 다솜이 사정을 알고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중국의 아버지께 부탁해서 중국에 취직 하도록 배려했다.

 

중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갑자기 다솜이가 물었다.

“어머니 구두를 왜 겹쳐 신고 다니세요?”

“응! 구두가 작아서 평소에는 겹쳐 신고 다니다 손님 만날 때만 바로 신는단다. ”

 

독도장터 윤종욱 사장님이 롯데마트에서 팔다 남은 구두를 한 박스 갖다 주셔서 우리는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작아서 더 이상 가져갈 사람이 없는 225mm 구두는 발이 작은 내가 겹쳐 신고 다녔는데 이 모습을 본 다솜이는 중국에 가기 며칠 전에 가족들을 정중하게 초청했다.

 

독도의병대 부대장인 아버지, 총무인 어머니, 졸업한 대학 조교 초청도 마다하고, 외국유학도 포기하고, 6.25당시 독도를 지킨 독도의용수비대어른들을 지키려는 부모를 도와 독도의병대 간사 일을 하고 있는 여동생을 초청한 곳은, 이마트의 구두점이었다.

 

그동안 과외지도로 받은 돈으로 다솜이는 가족에게 구두를 선물했다.

 

마지막 출국하면서 공항에서 요구하는 돈이 모자라 동생에게 2만원을 받아서 지불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다솜이가 자신이 가진 돈 전부를 구두 사는데 쓴 것을 알았다.

 

“다솜아! 미안하다. 우리 가족의 행복은 생명 바쳐 이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이 가신 길을 뒤따라 독도를 지키는 데 있음을 너도 알지?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너의 마음이 하루 속히 치유되어 기쁜 마음으로 이 대열에 같이 합류할 그날까지 엄마 아빠는 더 열심히 노력할께.”

 

다솜이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이 말을 나는 떠나가는 비행기를 향해 소리 없이 외쳤다.

 

 


김재호 12-08-25 07:11
답변 삭제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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