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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20 07:23
돌아온 시어머니의 웃음
 글쓴이 : 독도의병대
조회 : 10,382  

돌아온 시어머니의 웃음

 

“얘야 부추 좀 베어 오너라”

“예”

시어머니의 말씀에 얼른 대답하고 뒷마당으로 나가긴 했는데 부추의 어느 지점을 베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농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이 허리가 좋지 않아 힘든 일을 하면 입원부터 해야 하니 시어머니가 보실 때 함께 사는 셋째며느리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한참 부추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할 수 없이 남편을 불러 물어 보았더니 남편은 웃으면서 부추를 베어 주었고 나는 그 부추를 보란 듯이 들고 들어가 시어머니께 갖다 드리다 갑자기 된서리를 맞았다.

그 부추를 받아들자 마자 시어머니는 대뜸

“선생질 한 사람이 그것도 몰라 애비를 불러내!”

고래 고래 호통을 치셨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사신 시어머니가 보실 때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며느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였고,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은 고스란히 나에게 병으로 다가왔다.

 

한 번은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지인들이 자원봉사 하겠다고 왔는데 그분들이 보고 있는 현장에서 일 못한다고 시어머니 특유의 호통소리를 또 듣게 되었다.

두 사람만 있을 때 호통 치시는 것은 그나마 나 혼자만 듣고 넘어갔는데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호통 치시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남의 말 듣는 것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서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 사방에 어둠이 깔리자 고구마 밭이랑에 혼자 엎드려 한없이 울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날 눈물 흘린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었다.

그 날 모처럼 일을 도와주러 오셨다가 그런 광경을 처음으로 목격한 친정어머니였다.

키울 때는 큰 소리 한 번 안하고 키운 딸이 고구마 못 캔다고 시어머니께 혼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자 친정어머니는 울면서 집에 돌아가셔서

‘어떻게 키운 딸인데...... 고구마 못 캔다고 혼을 내다니......그까짓 고구마가 뭔데......’

하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그 일 때문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하셨다.

 

지금까지도 나는 딸이 시집가서 힘든다는 것을 알면 친정부모님이 괴로워 하실까봐 아무리 부부싸움을 하고 시어머니께 혼이 나도, 결코 시댁에서 있었던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해 왔다.

그러다 보니 친정어머니의 충격이 더 크셨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사람들은 내가 고생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독도지키기 운동한다고 차에서 먹고 자고 전국 순회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온실 안에서 자란 것 같던 내가 야생초로 변해버렸다.

‘내가 쓴 레포트를 빌려주는 경우는 있어도 다른 사람의 레포트는 절대 보지 않는다!’

‘나는 손해 봐도 공익을 위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나이는 어렸지만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생활했던 나에게 동료교사들은 교사친목회 여교사 대표로 줄기차게 나를 추천했다.

한번은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 대표로 수업연구를 하게 되었는데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점검하러 온 장학사님께 봉투를 전달하라는 윗분의 귀띔을 받게 되었다.

“저는 봉투 전달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돈으로 오늘 이 수업연구를 위해 함께 수고하신 동료 선생님들에게 한턱내겠습니다.”

본인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 어렵게 귀띔한 윗분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정말 그날 동료선생님들에게 그동안 수업연구를 도와 주셔서 고맙다고 한턱내는 일로 그 일을 끝맺음했다.

그 날 수업연구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지만 나는 나를 아끼고 사랑해준 동료 선생님들의 마음을 알게 되어 행복했다.

 

나름대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았던 내가 무너진 것은 독도 때문이다.

과거의 의병들처럼 정부의 지원 없이 독도지키기운동을 10여 년간 해오다 보니 from hand to mouth 생활이 익숙해 졌고 이 생활은 나로 하여금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사랑어린 호통에 돌아서 우는 며느리가 아니라 웃으면서 시어머니를 끌어안을 수 있는 넉살좋은 며느리로 변했다.

“어머니! 저는 농사는 못 짓지만 컴퓨터는 잘 하잖아요? 어머니는 컴퓨터 할 줄 아세요?”

이제는 호통 치는 시어머니께 한마디씩 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독도지키기 운동 한다고 집을 나가 돌아다니는 아들, 며느리가 안쓰러워 당신 몸보다 더 생각하시면서 호통 뒤에 챙겨주시는 시어머니의 속 깊은 정을 이 철없는 며느리도 눈치채버린 지금 와서는, 시어머니의 서슬이 시퍼런 호통의 날 샌 검은 내게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솜사탕으로 변해 더 이상 호통으로서의 효력을 잃어버렸다.

 

90세를 넘기신 시어머니는 이제 기력이 쇠하여 지셔서 논, 밭에 동행하는 것을 꺼리시고 어쩌다 동행이라도 하시게 되면 그만 하고 가자고 아이처럼 조르신다.

이제 시어머니의 눈에는 내가 일 못하는 미운 며느리가 아니라 일을 엄청 잘하는 사랑스런 며느리로 변해 버렸다.

실상은 농사를 짓는 일에 대해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데도 시어머니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시어머니는 이 사랑스런 며느리를 위해 이제 밤낮으로 축복기도를 하신다.

며느리의 성공이 아들의 성공임을 알고 계시기에......

 

고부간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이 땅의 며느리들이여! 조금만 참아보시라!

그대들이 성장하고 시어머니가 퇴보하면 어느 날인가 하나 되는 날이 올지니 그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

참는 그 시간에 더 사랑이 깊어지는 남편도 곁에 있고,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자녀들과 친척들이 있지 않는가?

시어머니의 웃음 속에 담겨있는 행복의 크기와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그대는 아는가?

사랑하는 아들의 아내인 그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는 이 땅에서 호통 치는 시어머니를 따라올 자 없으니......

그 시어머니의 축복의 손이 벌써부터 그대도 모르게 그대를 위해 축복하려고 올라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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